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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아들에게 고시원 얻어준 도박중독 아버지

사회투자지원재단 2009. 10. 9. 12:09

백수 아들에게 고시원 얻어준 도박중독 아버지

 

한때 한 달에 최고 1500만원까지 벌었지만 경마로 집과 재산을 다 날리고 고시원에 들어간 김장목(가명) 씨. 최후의 재산인 330만원까지 마권 구입에 쏟아 부었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고 술로만 살아갈 뿐입니다. 아내는 처가에서 투병 중이고, 당시 전문대에 들어간 아들도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입대했지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08년 사행산업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중 도박으로 문제를 경험하는 비율은 9.5%나 된다고 합니다. 겉으로 드러났든 아니든 성인 359만명이 도박 중독 상태에 있다는 뜻이지요. 김씨 역시 비슷한 경우이지만 어떤 치료나 상담도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 번에 이어 김씨의 사연을 소개합니다(전편의 ‘바로가기’는 이 글 맨 아래에 있습니다). 고시원 방값마저 떨어진 김씨는 서울역으로 갔습니다. 난생 처음인 노숙의 경험은 쓰라렸습니다. “하룻밤을 지새웠지만 진짜 못 자겠더라”고 합니다. 날씨는 춥고 주변은 소란스러운데다 자신은 신문지 하나로 온몸을 덮고 있었으니까요.

 

 [[ 김씨 같은 분들이 인생의 어두움에서 벗어나 빨리 사회로 복귀하기를 바랍니다.

일러스트: 임동현 ]]

 

쉼터 입소 후 일하며 몇 년 동안 마음 안정시켜

 

견디다 못해 구청으로 찾아간 김씨는 노숙인·부랑인 쉼터를 소개받았습니다. 쉼터에서는 공공근로를 추천했지만 김씨는 “아내 병원비와 아들 학비를 대려면 어림도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김씨는 공공근로 대신에 알음알음으로 목공 일을 하며 처가로 돈을 부쳤습니다. 아들이 입대한 후로는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4~5년 동안 몇 군데의 쉼터 생활을 하면서 김씨는 차츰 의지를 되찾았습니다. 지금 생활하는 곳은 이전에 있던 쉼터보다 식사의 질이 좋고 분위기가 자유로워서 심신이 안정된다고 합니다. 술은 계속 마셨지만 한 달 전부터는 금주에 들어갔고, 매일 운동을 한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일기도 쓰며 미래를 설계한다고 하네요.

 

“일기 속에서 어떤 목표를 설정했어요. 앞으로는 절대 술을 안 먹고, 건강 챙겨가면서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일이 없는 겨울 동안 몸을 완벽하게 만들어서(인터뷰는 지난 겨울에 실시했습니다) 내년부터는 열심히 살아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김씨는 아들 얘기를 꺼냈습니다. 오래 만나지 못했지만 연락은 주고받는답니다. 아들은 제대한 뒤 돈을 벌기 위해 휴학하고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한다고 하네요.

 

“내 아들이 요새 좀 말썽을 부려요. 뭐, 엄마가 아프고 아빠가 헤매고 있으니 애도…. 본래 심성은 착해요. 복학해서 1년쯤 학교 다니다가 사정이 어려우니까 자기가 학비를 벌겠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 저 뜻대로 돼요? 핸드폰 요금이 연체됐고 다단계 판매 교육하는 데도 갔대요. 다행히 빠져나온 모양이에요.”

 

아버지가 된 마음으로 야단을 쳤지만 아들은 잔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한동안 전화를 걸지 않았답니다. 김씨는 “오늘 다시 연락이 왔다”며 “돈 보내줘야 한다”고 중얼거렸습니다. 부랑인 김씨는 자신처럼 헤매고 있는 아들에게 할 말이 있답니다.

 

 

 [[ 자원봉사자의 음악 연주도 시설 입소자들의 마음을 다스려줍니다. 출처: 구세군브릿지센터 ]]

 

“아들에게 다 말하려고요”

 

“아들은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잘 몰라요. 그놈과 만나서 다 말하려고요. 아빠가 제대로 마음먹고 살려고 노력한다. 너도 앞으로 열심히 살자. 우리 둘이 서로 도와가며 일어서자고 하고 싶어요. 아들래미도 굉장히 착하거든요? 단지 아빠 엄마가 이끌어주지 못하는 거잖아요.”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김씨는 부모 없는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합니다. 자식한테는 그런 설움을 물려주기 싫었는데 아버지인 자신도 헤매느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후회가 된다고 하는군요.

 

얼마 뒤에 김씨는 정말 아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때 아들에게 자신이 부랑인 보호시설에 있으며 이제 정신 차리고 살겠다는 각오도 말했답니다. 아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뭐 끄덕끄덕 하더라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근처에 월 18만원짜리 고시원을 얻어 줬어요. 일주일쯤 내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주니까 그놈이 쪼오끔씩 변하더라고요. 처음엔 막 짜증내더니 이제는 반항이 줄었어요. 하지만 매일 찾아가는 건 싫어하니까 하루걸러 가고, 전화로 양치질이나 독서 같은 습관부터 권하려고요.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게.”

 

하나뿐인 자식을 곁에 두고 지켜보기 위해 아버지는 월세나 전세가 아닌 고시원을 얻어 준 것입니다. 왠지 서글프군요. 하지만 그것이 계기가 됐는지 부랑인 김씨는 시설에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래미가 학교에서 건축 인테리어를 배우는데 이 업계는 취직하더라도 프리랜서로 생활하는 사람이 많아요. 나는 목수니까 인테리어 가게를 열고 아들과 서로 도울 수 있지요. 불경기에 서로 믿지 못하면 단가가 다운되는 경우가 많은데 부자 관계에선 그럴 일이 없잖아요.”

 

도박이나 알콜 중독보다 무서운 건 꿈이 사라지는 것이고, 그보다 괴로운 건 자신의 하나뿐인 피붙이가 미래를 찾지 못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오랜 기간 헤매다가 작은 길을 발견한 김씨가 가족과 함께 손잡고 나란히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끝>

 

‘도박중독 아버지, 방황하는 아들을 만나다’ 1편 다시 보기

http://blog.daum.net/kfsim/8462455

 

※ 희망인프라 블로그를 운영 중인 사회투자지원재단은 지난해 ‘노숙인·부랑인의 자립자활을 위한 감정적 임파워먼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때 만난 김씨의 사연을 여기 소개하는 이유는 이들의 재기·재활을 위해 마음의 치료가 다른 지원과 함께 이뤄져야 함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2009년 10월9일(금요일)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