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니까 회사 그만두라니!
임신하니까 회사 그만두라니!
2008년 현재 우리나라 여성의 합계출산율, 즉 평생 낳을 수 있는 자녀 수는 1.2명에 불과합니다. 경제가 어렵고 아이들 키우기가 힘들어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장에서의 따가운 시선도 큰 문제입니다. 육아 휴직이나 출산 휴가가 법으로 보장돼 있지만, 임신한 여성 직장인을 백안시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의 경우는 더 심하다고 합니다. 임신했다는 말에 축하는커녕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출산할 동안의 업무 공백은 어떻게 메울지 고민’이라고 볼멘소리를 내뱉는 상사 앞에서 산모가 당당해지기란 쉽지 않지요.
그 탓인지 2008년 고용보험 가입자 중 육아휴직을 사용한 비율이 42.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심지어 회사의 홀대를 참지 못하고 퇴사한 임산부도 있다고 하는군요.
[[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인 인천의 서해출산육아돌봄센터에서 관리사들이 산후 체조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모든 아기엄마들이 휴가를 보장받고 이처럼 정성껏 몸 푸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
네덜란드, 임산부·아기엄마 위한 탄력근무제 실험
우리나라도 출산율 증가와 (직장인) 임산부 보호에 힘쓰자는 목소리는 높지만, 구체적으로 뭘 할지 잘 모르는 상태입니다. 특히 직장여성에 대해서는 피부에 와 닿는 조치가 부족하지요. 반면 네덜란드는 정부가 나서서 구체적 실행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2001년 12월~2006년 12월까지 네덜란드는 여성 직장인의 출산 증진과 육아 보장을 위해 탄력근무제에 관한 실험을 3차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1차 기간에만 140개의 사업이 이뤄졌는데, 정부는 물론이고 여러 회사와 기관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가 이런 실험을 진행한 배경이 있습니다. 점점 많은 여성들이 노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남편의 보육책임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편부모 가정 등 새로운 가구 형태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사회 시스템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근무 조건 역시 바꿀 필요가 있었습니다. 노동시간의 유연성, 업무 시간과 직장 공간의 변화 등 부모가 됐거나 부모가 될 직장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출산과 직장과 가정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육아와 업무 조화 위해 소프트웨어까지 고민하는 정부
한마디로 네덜란드 정부는 육아와 업무의 조화를 위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것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법제도 마련이라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까지 챙기겠다는 것이죠.
이미 이 나라는 1999년부터 복지기관, 기업체, 지역당국이 모여 업무와 가사를 조화시키기 위한 ‘일일 과업 수행 인센티브 계획’이라는 사전 프로그램을 수행한 바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탄력근무제도의 실험이 2000년대 중반까지 이뤄진 것입니다.
실험 내용은 ▲아이들이 방과 후 즐길 수 있는 여가 활동의 제공 ▲근무시간 자율 선택제 시행 ▲시간제 일자리의 소개 등입니다. 직장인이 출산뿐 아니라 육아에도 소홀하지 않게끔 근무시간을 알아서 조절하고, 아이들도 부모님이 안 계실 동안의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 한 업체가 개최한 행사에서 아기 발싸개를 손수 만드는 예비 아빠들. 우리나라 아빠들의 육아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사진: 이플러스 ]]
직장여성뿐 아니라 회사와 고객도 혜택
비록 실험 수준이지만 결과는 희망적이었답니다. 한 병원은 노동과 육아의 조화를 보장하는 노동계약을 체결했고, 덕분에 수술 팀에 더 많은 여성을 고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혜택은 직장여성뿐 아니라 병원과 환자에까지 돌아갔습니다. 수술 횟수가 5개월간 341회나 늘어났고, 환자들의 대기 리스트가 크게 줄어든 것이죠.
네덜란드 사회고용부의 프로젝트 팀 리더인 야니 외멜링(Janni Oemeling) 씨는 “실험 결과를 분석하고 정책 자료로 만들어 정부, 지방자치단체, 회사, 학교 등 협력기관에 보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프랑스, 핀란드, 이탈리아 등과 함께 유럽 차원의 프로젝트로 발전시키는 중이랍니다.
우리나라도 직장여성의 육아 보장과 출산율 증가를 위해 많은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논의나 제도 마련에만 그치지 않고 실행할 수 있는 뭔가를 당장 착수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그 또한 정부와 사회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끝>
2009년 8월6일(목요일)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