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때 요정에서 일한 그에게 희망은?
16세 때 요정에서 일한 그에게 희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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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에 어머니가, 열두 살 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지요. 열세 살에 서울로 올라와서 일했고, 나중에는 직업소개소에서 경기도 용인의 한 요정을 소개받았어요. 그 때가 열여섯 살이었어요.”
한 번 단추가 잘못 꿰인 인생은 돌이킬 수가 없을까요? 50세인 양주환(가명) 씨의 얘기를 들으면 답답할 뿐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읜 양씨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십대 시절 요정에서 일하며 술을 배웠고, 끝내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술 때문에 여러 번 보호시설에서도 쫓겨났지요.
[[ 노숙인·부랑인 중에 알코올 중독인 분들이 많습니다. 술이 유일한 도피처로 여겨지는 탓일까요. 누구든 팍팍한 삶을 지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일러스트: 임동현 ]]
부모님 잃고 12세부터 사회생활 시작
13세에 상경한 양씨는 변변한 일이 없어서 수원에 살던 큰누나에게 갔다고 합니다. 뜻밖에도 그 곳은 술집이었습니다. 함께 몇 개월간 살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중국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시 서너 달 동안 배달 일을 하다가 힘이 들어 그만두고 직업소개소에서 안내받은 곳이 요정이었지요.
“술집 중에서도 고급이죠. 룸살롱보다 차원이 높다고 보면 돼요. 높으신 분도 많이 왔어요. 육군 참모총장이나 유명한 영화배우도 봤지요. 2년 동안 일하다 보니 나이에 비해 술하고 담배를 엄청 일찍 배웠지요. 특급 술집이라 소주는 안 먹었어요. 주전자로 정종을 따끈하게 데우거나 맥주를 마셨지요.”
2년 동안 양씨는 자신도 모르게 술에 빠져듭니다. 다행히 뿔뿔이 흩어진 가족 중에 형님이 찾아왔고, 열여덟 살의 양씨는 형님의 권유로 서울 장위동의 목공소에 들어가지요.
무보수였지만 자신이 들어간 목공소는 식사를 제공하고 잠을 재워주기 때문에 다른 데보다 조금 더 나았다고 합니다. 목공소 안쪽의 조그맣고 먼지가 가득한 방이 숙소였지요. “지저분해도 어차피 잠을 자야 하니까 대충 치우고 잤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자 양씨는 목공소를 그만두고 가구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 대가는 처음에 일당 2만5000원이었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15만원으로 늘어났습니다. 주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밤에 두 명이서 소주 한 박스를 마신 적도 있다고 합니다. 안주는 라면이었다는군요.
이때만 해도 양씨의 인생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IMF 이전까지 목공 일을 하며 돈을 법니다. 가정은 꾸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결혼 시기를 놓쳐버렸다”며 “선도 몇 번 봤지만 운대가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모아둔 재산도 변변치 않은 듯했습니다. 역시 술 때문이었을까요?
[[ 절주 교육을 받고 있는 쉼터 사람들. 출처: 보현의 집 ]]
월세 15만원 못내 방에서 쫓겨나
IMF가 터지면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여러 직업을 오가던 양씨는 2000년대 들어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공공근로에 매달렸습니다. “대기인원이 많아서 3개월 하니까 딱 끊기더라”고 합니다. 3개월이라 봤자 한 달 임금이 60만원. 월세 내고 술 먹으면 남는 게 없었다는군요.
“공공근로 잘리고 나서는 방세를 못 내니까 보증금을 자꾸 까였지요. 집주인 눈치가 보여서 동사무소를 찾아가니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넣어 주더라고요. 3개월 동안 한 달에 19만3000원이 나오는데 도저히 생활이 안 되잖아요.”
양씨의 월세 방은 보증금 700만원에 월세 15만원. 예전 같으면 월세는 하루벌이 수준이었지만, 보증금까지 까인 양씨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사비 조로 100만원을 준 집주인이 고마웠다”고 하네요. 친구 집에 의탁했지만 짐은 밖에 그대로 쌓아둬야 했습니다. 비가 내리고, 짐이 온통 젖어버리자 양씨는 정말 혼자가 됐습니다.
“집주인에게 받은 100만원만 가지고 친구 집을 나왔어요. 밤새 술을 먹고 어느 지하 주차장의 차 옆에서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불량배가 그랬는지 지갑이 사라졌어요. 이제는 소주 한 잔 마실 돈이 없고 완전히 거지가 됐지요. 용역 나갈 생각도 안 들고, 사람이 폐인으로 되는 게 순식간인가 봐요.”
6년 전 양씨는 길가에 쓰러져 있다가 동사무소 직원의 발견으로 쉼터에 들어갔습니다. 요양과 치료를 하면서도 술을 계속 먹어서 쫓겨나기를 여러 차례 했지요. 술 때문에 사타구니의 물렁뼈가 썩어서 고관절 수술까지 했는데, 그 다음에도 술을 마시다가 들켰습니다.
인생의 책임은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양씨처럼 출발선 자체가 뒤쳐진데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제대로 교육도 못 받은 이에게도 손가락질밖에는 할 수 없을까요? 열두 살에 부모님을 잃고 형제자매도 불우하게 살고 학교도 못 다니고 청소년기를 요정에서 보낸 양씨에게 남은 인생의 희망은 있을까요? <끝>
※ 희망인프라 블로그를 운영 중인 사회투자지원재단은 지난해 ‘노숙인·부랑인의 자립자활을 위한 감정적 임파워먼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때 만난 양씨의 사연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들의 재기·재활을 위해 마음의 치료가 다른 지원과 함께 이뤄져야 함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2009년 12월21일(월요일)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