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취약계층 고용, 한국과 벨기에의 차이
비정규직법의 시행이냐, 유예냐, 연장이냐를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정부는 ‘100만 명 해고 대란’을 경고했지만, 지금까지 노동부가 파악한 숫자는 1200명 수준이어서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불가피하게 직장을 떠난 분들의 사정은 정말 안타깝지만, 공공부문의 해고 인력이 많다는 사실에서 허탈감마저 드네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보면 정계와 재계 일부에서도 부정적인 입장이 많습니다. 정치권과 기업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데요, 벨기에 동북부의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여러 회사들이 시민단체 등과 함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사례가 있습니다.
[[ 4일(토) 여의도에서 열린 쌍용차 및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에 엄마와 아이들이 참석했네요. 사진=전국철도노동조합. ]]
소외계층 채용한 후에도 공평한 대우받게 노력
그 시각이 독특합니다. 소외계층의 고용은 빈곤 해결뿐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도 높인다는 것이지요. 더구나 채용된 뒤에도 진급이나 훈련 등에서 공평한 대우를 받도록 지원합니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제도상으로도 그렇지만, 현장에서도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벨기에의 사례가 부럽네요.
2002년 벨기에의 겐트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 지역의 여러 회사들이 노동시장에서 취약계층의 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등한 고용 기회를 약속하고 나선 것입니다.
해당기업들은 유럽사회기금(EU 지역 간 격차 해소와 협력 지원을 위해 유럽연합이 설치한 기금)의 사회 통합을 위한 행동 프로그램인 ‘사회적 결의안’(Social Act)에 등록해 이런 약속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있습니다.
겐트의 실업률은 약 11%로 우리나라보다 높지만, 벨기에의 주요 4대 도시 중에서는 가장 낮습니다. 그럼에도 이민자, 구직 능력이 떨어지는 실업자, 장애인은 여전히 취직이 어렵습니다. 프로젝트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면, 소외계층의 일자리 보장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우리와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 비정규직보호법을 풍자하며 시민들에게 무료로 뻥튀기를 나눠주는 한 시민단체의 퍼포먼스. 사진=한국비정규노동센터 ]]
우리 정부·기업과 벨기에 간의 시각 차이도 커
“이처럼 혜택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노동시장으로 편입된다면, 빈곤이나 실업문제 해결이라는 사회적 목표의 달성 외에 다른 효과도 있습니다. 곧 활용 가능한 인적 자원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며, 자연히 고용주의 요구도 충족시키게 되지요.”
벨기에의 소외계층 문제나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문제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에 대한 일자리 제공은 취약계층의 구제뿐 아니라 경제적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다만 정부와 기업의 시각이 어떻게 다르냐에서 소외계층을 고용하거나(벨기에) 2년간 성실히 일한 사람을 자르려 하는(우리나라) 것입니다.
겐트 시의 기업과 시민단체들은 ‘겐트, 노동의 도시’라는 실천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80개 이상의 회원 조직이 참여한 것으로, 기업 참여 역시 활발하다고 합니다.
2003년 10월에는 소크라테스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기업들이 자신의 사회적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온라인 테스트 프로그램입니다. 30여 개의 회사가 이 테스트를 거쳤습니다. 기업들이 자신의 사회 공헌을 어떻게 향상시킬지 알아보는 무료 안내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2004년 11월은 이 프로젝트의 막바지였는데, 기존의 참여 기업들 외에도 최소한 10개 회사가 사회적 결의안에 추가 등록을 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담당자의 말을 들어볼까요.
[[ 해고된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 아주머니의 눈물. ]]
채용·진급·훈련·노동환경 등의 고용관계 중시
“우리는 사회적 결의안에 참여한 기업들에게 고용 정책을 꼼꼼히 검토할 것을 요구해요. 채용과 선발 과정뿐 아니라 내부 진급, 훈련, 업무 환경의 질, 노동자의 건강과 복지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합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알게 모르게 행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단순히 소외계층을 취직시킬 뿐 아니라, 채용 이후의 고용관계 역시 공평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지요.
겐트 지역의 여러 회사와 사회기관들은 이런 개념을 잘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여러 파트너들이 사회적 결의안의 존속에 관심을 가졌고,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단체들이 겐트 지역의 모델을 바탕으로 자신에 맞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하네요.
우리나라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실업자를 비롯해 사회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여러 활동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기업의 관심이 필수적일 테지요. <끝>
2009년 7월6일(월요일)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