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 남자, 독신주의자가 된 사연
올해 39세의 조상훈(가명) 씨는 스스로 독신주의자임을 밝힙니다. 한때 5~6년 동안 사귀던 여성이 있었지만 결혼 얘기가 오갈 때쯤 헤어졌습니다. 그 무렵 조씨는 “내 몸이 이상한지, 예쁜 여자를 봐도 어떤 인간관계를 맺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남성 취향은 아니고, 이른바 ‘골드미스터’라고 해서 잘 나가는 중년 독신남과도 거리가 멉니다. 다만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까지 짓눌릴 만큼 열악한 환경에 지금까지 놓여 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병든 어머니를 모시던 끝에 빚까지 생겼고, 술에 절어 살다가 부랑인 보호시설에 입소했습니다.
조씨는 요즘 흔히 말하는 ‘가난한 1인 가정’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9월 현재 341만5121가구가 1인 가구라는데, 부랑인 시설을 전전하는 조씨는 이런 통계에도 잡히지 않을 겁니다. 가난과 외로움은 물론이고 장래 전망까지 불투명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조씨의 모습입니다. 그의 인생 역정을 들어볼까요.
[[ 드라마 상의 주인공은 풍족하게 살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고 있는’ 독신 가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조씨 역시 수많은 굴곡을 겪은 가난한 1인 가정입니다. ]]
치매 걸린 어머니 직접 간병하기로 결심
10여 년 전, 제대 후 서울의 한 중견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조씨는 자취 생활을 마치고 어머니와 합쳤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파킨슨병과 치매가 겹쳤고, 조씨는 노인 요양시설을 택하는 대신 직접 간병을 결심한 것이지요. “자식이 있는데 뭐 하러 그런 데를 보내느냐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간병인 한 명을 고용하고 어머니와 함께 병원과 집을 오가며 조씨는 회사 생활을 병행했습니다. 낮과 밤이 분간되지 않는 2년이 흘러갔습니다. 그동안 조씨 역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습니다.
“24시간 사람이 붙어 있어야 했어요. 빌라 4층에서 살았는데, 어머니가 창문으로 막 나가려는 걸 내가 붙잡았지요. 밖에서 자꾸 누가 부른대요. 환각 증세까지 보이니까 새벽에도 혼자는 도저히 놔둘 수가 없었어요. 저도 많이 지쳤지요. 2년 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시련은 지금부터였습니다. 직장은 계속 다니고 있었지만 간병인 월급과 병원 치료비로 통장의 잔금은 제로가 되고 은행 대출까지 받았습니다. 신용카드 한도가 꽉 차서 조씨는 이른바 돌려막기에 들어갔습니다.
“1990년대 중반인데 월급은 약 150만이었어요. 생활비와 병원비를 제하면 항상 적자였지요. 우리 회사와 한 번 거래를 튼 은행에는 실적을 올려줘야 했기 때문에 신용카드가 열네 개나 있었지요. 하다 보니까 현금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자가 너무 비싸서 은행 대출을 받았어요. 그것도 빚이잖아요.”
[[ 뭉크의 절규.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까지 포기한 조씨도 이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
“하~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회의 들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조씨의 빚은 3000만원이 됐습니다. 어머니를 추모할 사이도 없이 빠듯한 월급으로 빚 갚기만 계속하다가 조씨는 갑자기 인생에 회의가 들었다고 합니다. 인간으로서의 붕괴가 시작된 것이죠.
“하~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결혼을 하고 돈을 모으고 집도 마련해야 하는데… 돈이 불어나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미래가 암담하니 점점 사람이 지쳐 가더라고요. 나이는 서른 살인데 아무것도 해 놓은 게 없었어요. 처음 직장 생활할 때는 저축도 했는데 병원비로 다 들어가고 대출금도 있으니까 항상 빠듯했지요.”
5년 넘게 사귀던 여자 친구와는 어머니가 아프면서 헤어진 상태였습니다.
“여자는 부모님이 일찍 사고로 돌아가셔서 남동생하고 둘이서만 살았어요. 동생이 군대 가면 혼자 외롭고, 나와 사귄 기간도 오래됐으니까 결혼 얘기가 당연히 나왔죠. 하아~ 내가 잘못했죠. 내 어머니 상태가 이래서 모시고 살아야 된다, 직장 그만두고 들어와서 살림하라고 했더니 그렇게는 못하겠대요.”
이후부터 조씨는 이성이나 연애에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몸에 이상이 왔나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처해 있는 상황과 피폐해진 정신의 문제가 아닐까요. 또 조씨는 자신이 위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위선적인지 한 번 들어보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인제 한 번 ‘개판’으로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착한 척하지 말자고요. 난 착하지 않고 효자도 아닌데 그동안 남에게 잘 보여야 하고, (병구완에 시달리면서도) 친지들한테 굉장히 능력 있다는 느낌을 줘야 했어요. 자존심 같은 게 좀 있어서….”
빚 독촉이 심해지면서 조씨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습니다. 회사에도 은행 측의 연락이 왔고, “월급 압류하겠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조씨는 “창피해서 빨리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못했다”고 합니다.
문득 그는 당시를 돌아보며 “일로 풀든 여자 친구를 만나든 욕구를 분출시켜야 했다”고 후회합니다. 지금이라도 과거로 돌아간다면 가능한 일일까요. 어쨌거나 조씨는 술에 의지하기 시작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 핑계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조씨의 사연을 적다 보니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네요. 못 다한 이야기는 다음번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조씨의 인생 역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끝>
※ 희망인프라 블로그를 운영 중인 사회투자지원재단은 지난해 ‘노숙인·부랑인의 자립자활을 위한 감정적 임파워먼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때 만난 조씨의 사연을 여기 소개하는 이유는 이들의 재기·재활을 위해 마음의 치료가 다른 지원과 함께 이뤄져야 함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2009년 9월21일(월요일)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