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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독촉에 숨어 살다, 어엿한 사장님으로

사회투자지원재단 2010. 4. 6. 11:05

 

교육생 인터뷰: 오리가게 창업하려는 김상희씨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홍보 전략 바꿔

교육 통해 자금낭비 막았으니 “이미 돈 벌었네요”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자영업자는 줄어들고 있다.

 

2009년 10월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9월 자영업자는 573만5000명으로 지난해 9월보다 32만4000명(5.4%) 줄었다. 이는 카드 대란이 일어났던 2003년 4월(33만4000명 감소) 이후 최대 수치라고 한다.

 

자영업자들이 놓인 시장환경도 좋지 않다. 대형할인마트의 공격적인 입점으로 인한 동네 상권의 붕괴가 이어지고 있다.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정책도 늘어나기는 했지만 체계적이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도 실업에 떠밀린 생계형 창업은 이어지고 있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은 생계형 창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영세자영업자의 경우 창업 준비기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특히 저소득계층인 마이크로크레디트 창업주들이 창업관련 정보 및 교육과정이 일반창업주에 비해 열악한 처지에 있다고 보고 중앙자활센터가 추진하는 경영 안정을 위해 ‘창업주의 경영 역량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교육프로그램의 개발’(이하 교육 프로그램)에 연구자로 참여했다.

 

다음의 내용은 개발과정에 진행한 교육과정에 참여한 교육생의 사례다.

 

몇 년 전부터 김상희 씨(가명)는 미래가 불투명했다. 경기도 수원에 살던 김씨는 유통업, 식당업 등에 종사하며 나름대로 성공했다 싶었지만 빚보증을 잘못 섰다. 한 번 일이 틀어지자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채권자들의 빚 독촉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됐다. 김씨는 친구 집에 숨어서 더부살이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위기의 장영업자들]] 

 

“늦은 시간 집에 돌아와 지친 몸으로 자리에 누울 때마다 ‘내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새벽까지 빚 갚을 걱정과 채무 독촉에 괴로워했죠. 어느 날, 밤새 뒤척이다가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마음먹었어요.”

 

채권자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썼다. 수시로 빚 독촉이 들어오다 보니 영업을 할 수가 없다는 점, 장사가 안 되면 채무 변제가 어렵다는 점, 결국 보증인인 자신의 목을 조르기만 하면 채권자로서도 손해라는 점, 믿고 기다려 주면 반드시 빚을 청산하겠다는 점을 조목조목 적었다. 편지가 채권자들에게 도착했을 즈음 빚 독촉이 뚝 끊겼다.

 

한숨을 돌린 김씨는 모든 재산을 처분해 빚을 갚았지만 갑상선 암이라는 시련이 또 찾아왔다. 수술과 재활을 거치면서 지난 2년 여 동안 김씨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다. 그러다가 경기도 이천의 한 오리집을 인수하기로 했다. 과거에 장사를 하던 당시 김씨가 만들어 준 들깨수제비를 손님들이 지금도 그리워한다고 했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창업은 하고 싶은데 돈이 부족했어요. 미소금융에 대한 뉴스를 듣고 인터넷을 뒤졌지요. 서민에게 소액저리로 대출하는 기관이 의외로 많더군요. 희망키움뱅크 사업에 참여한 여성재단의 프로그램이 제일 날짜가 맞았지요. 지난 연말 지원을 신청했어요. 사업계획서와 자기소개서를 적으면서 내가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 점점 확신이 섰죠. 서류 작성하는 도중에 더 힘이 나더라고요.”

 

오랜 사업 경력 덕분에 구체적인 지원서 작성이 가능했다. 담당자에게서 “본인이 쓴 서류가 맞느냐”는 질문까지 들었다. 김씨는 자신이 선정될 거라고 확신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늦는다는 심정에 미리 요식업 교육까지 들은 상태였다. 이처럼 ‘준비된’ 김씨에게 지난 1월말 1박2일 동안 진행된 마이크로크레디트 창업자 자립역량 강화 교육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지금까지의 사업 관점이 아날로그였다면 교육 이후에는 디지털로 바뀌는 느낌이었어요. 창업할 때는 남들과 비슷한 아이템을 갖고 열의만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잖아요. 이번 교육 시간에 홍보나 마케팅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이틀의 교육과정에서 일체 다른 잡념에 빠지지 않았고, 졸아본 적도 없을 만큼 충격이 컸어요.”

 

[[창업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들]] 

 

특히 홍보 요령 교육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에 김연희 씨는 전단지를 무차별 살포하고 대로변에 현수막을 걸 계획이었다. 교육 과정에서 김씨는 기존 방식을 버리기로 했다. “강사에게 들어보니 이벤트 같은 ‘돈지랄’은 의미가 없었다”며 “자금 낭비를 막았으니 이미 돈을 벌어들인 기분”이란다. 새로 기획한 홍보 방식은 이랬다.

 

“상권 분석을 해봤어요. 식당에서 10km 이내에 읍·면사무소가 세 개 위치하고 있지요. 중심지에서 먼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50~60대의 연령층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에요. 흔히 먹는 쇠고기, 돼지고기보다 오리고기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죠. 얼마 뒤에는 골프장도 개장할 예정이라 유동인구가 더 늘어날 거예요.”

지역 분석이 끝나자 김씨는 홍보 전략을 설명했다.

 

“이 지역의 전화번호부 책에는 주민들의 집 전화와 휴대전화 번호가 기재돼 있어요. 매일 열 분씩 문자 메시지를 넣어드리기로 했어요. 문자를 보고 오신 손님에게는 가격의 10%를 할인할 예정이에요. 요즘은 핸드폰을 열면 바로 화면에 메시지가 뜨기 때문에 노인들도 문자를 확인하기 쉽잖아요.”

 

간판과 인테리어도 손볼 작정이다. 오리 조형물을 설치해 점포의 특성을 살리고, 전통 혼례를 치르는 신랑과 각시 모형으로 포토 존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추억과 재미를 선물하겠단다. 아이와 함께 온 부모들은 어린이 좌석을 선호한다는 강사의 말을 듣고 당장 의자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밖에도 배운 것이 많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지요. 업종이 다른 분과 함께 교육을 들은 덕분에 새로운 사례와 성공담을 많이 알았어요. 그 중에는 블로그를 개설해 홍보에 도움을 받은 경우도 있었어요. 나는 50세가 넘은 나이이지만, 꼭 해보려고 해요. 참, 석봉 토스트의 성공담도 인상 깊었어요. 노점상으로 출발했지만 위생을 강조해 차별화한 것이 주효했다고 하더군요.”

 

사업할 때 김상희 씨는 열의가 넘치는 듯했다. 손님이 아무리 많이 와도 사전에 공기밥을 열 그릇 이상은 만들어놓지 않는 게 철칙이었다. “밥이 팔리지 않으면 식어서 누렇게 된다”며 “방금 안친 밥맛만으로도 손님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압력밥솥으로 10분이면 금세 따끈따끈한 밥을 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했다.

 

“음식점에선 식사 후에 남긴 반찬 재활용이 문제가 되잖아요. 난 손님이 보는 데서 남은 반찬을 몽땅 한 그릇에 쏟아 넣어요. 반찬도 사오지 않고 직접 만들어요. 남들이 믿지 않을까봐 일반 김치 대신 시장에서 잘 팔지 않는 겉절이를 내놔요. 손님 입장에서도 매일 먹는 김치보다 겉절이 반찬이 더 새롭잖아요.”

 

과거에 식당 영업을 할 때도 김씨는 새로 생긴 음식점은 반드시 찾아가 맛을 봤다고 한다. “밑반찬이라도 한 가지씩은 배워오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별로인 집은 남들도 두 번 다시 가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하면, 고객에 대한 마음가짐이 새로워진단다. 그런 김씨에게 희망키움뱅크 사업은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2000만원의 자금이 크지는 않지만 이자율이 낮잖아요. 우리 같은 소상공인은 1~2%의 금리에도 목숨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도움마저 없으면 점포 얻기가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서민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저도 많이 홍보하고 싶어요. 사업 목표에도 내가 받은 만큼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알려주고 싶다고 썼어요.”

 

이번 교육에 대해서는 시간이 짧았다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마케팅이나 홍보 전략은 시간을 더 늘려주면 좋겠단다. 교육이 잡히면 식당 문을 닫고서라도 다시 들으러 오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으로 김상희 씨의 말.

 

“강사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백화점에서 세일기간 중에 10만원짜리 옷을 1만원에 파는 이유가 뭐냐고요. 더 많은 상품을 구입하게 하기 위한 미끼작전이라는 거죠. 그런데 난 달라요. 만원짜리 옷만 사고 돌아올 자신이 있어요. 그렇게 알뜰하게 살았는데 넘어진 것이 억울하죠. 지금은 과거를 잊어버리고 다시 출발할 생각이에요.”

 

5년 뒤 체력이 달릴 즈음엔 식당 영업 대신 간장게장 사업에 뛰어들 생각이다. 손님들이 김씨가 만들어 준 게장 맛에 반했다고 한다. 블로그를 공부하려는 이유도 장래에 인터넷 온라인으로 상품을 출시하기 위해서란다. 한 단계 한 단계 꾹꾹 눌러 밟으며 치밀하게 준비하는 김씨의 새 삶이 시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