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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공부하는 이유

사회투자지원재단 2010. 4. 28. 11:32

교육받고 ‘창업’ 자신감이 생겨요

좋은 정보, 아이템도 서로 나눴죠

 

자영업자들이 놓인 시장환경도 좋지 않다. 대형할인마트의 공격적인 입점으로 인한 동네 상권의 붕괴가 이어지고 있다.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정책도 늘어나기는 했지만 체계적이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도 실업에 떠밀린 생계형 창업은 이어지고 있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은 생계형 창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영세자영업자의 경우 창업 준비기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특히 저소득계층인 마이크로크레디트 창업주들이 창업관련 정보 및 교육과정이 일반창업주에 비해 열악한 처지에 있다고 보고 중앙자활센터가 추진하는 경영 안정을 위해 ‘창업주의 경영 역량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교육프로그램의 개발’(이하 교육 프로그램)에 연구자로 참여했다.

 

 

다음의 내용은 개발과정에 진행한 교육과정에 참여한 교육생의 사례다.

 

30대 아들과 함께 이번 교육에 참여한 전명희 씨는 서울 광진구에 있는 건국대 인근 대학로에서 ‘버디 퍼피(Buddy Puppy)’라는 애견 카페를 준비 중이다. 2월초 사업장을 찾았을 때는 내부 단장으로 정신이 없어 보였다. 커피메이커가 말썽인지 한참 씨름하고 있었다.

 

 

[[이번 교유과정에 참여해 인터뷰에 응해주신 전명희씨]] 

 

여기 저기 전화를 걸던 전씨가 인사를 나누러 다가왔다. 한 손에 지팡이를 쥐었고, 한 쪽 다리를 약간 절었다.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고 말했다. 창업에 나서며 한꺼번에 몇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정신이 없다고 하소연했지만, 육십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피부는 건강하고 음성은 맑고 표정은 밝았다.

 

“두근두근한 심정이에요. 당초의 판단과 달리 이 사업은 큰 시장이 아니거든요. 애견샵은 서울 강남이 시작인데, 수요가 적어서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지금은 애견 마니아들이 주로 찾습니다. 이 녀석들이 우리 자산이에요.”

 

두세 평쯤 되는 한 쪽 공간에 낮은 울타리가 쳐지고, 알록달록 앙증맞은 옷을 입은 네다섯 마리의 개들이 장난을 치거나 재롱을 부렸다. 닥트 훈스, 비글 등 종류도 여럿이었다.

 

개를 좋아하는 손님들은 스스럼없이 찾아와 친구를 기다리거나 책을 읽기도 한다고 한다. 귀여움을 떠는 개들에게 먹을거리를 사주기도 한다. 아파트에 산다는 어떤 임산부는 개가 그리워서 애견카페를 찾는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단다. 시장이 넓진 않지만 ‘맞춤형 수요 시장’이라 부를 수 있을 듯하다.

 

28년간 양장점을 하다가 불황으로 그만뒀다는 전명희 씨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들과 힘을 합쳤다. 공동 운영자인 아들이 애견을 얻어오고 상호 디자인과 가게 인테리어를 도맡았다. 아들이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제공하면 어머니 전씨는 과거 경력을 살려 개 주인과 강아지의 커플룩을 맞춤 제작하기로 정했다. 양장점 이후 컴퓨터 강사를 한 전씨는 각종 지원제도도 찾아봤다. 희망키움뱅크 신청 역시 그 과정에서 이뤄졌다.

 

“몸이 불편한데다 인터넷 교육까지 하니까 웹 서핑을 많이 하잖아요. 장애인 지원단체나 소상공인지원센터의 관련 정보를 많이 알았어요. 지난해에도 한 단체에서 6개월 교육을 마쳤고, 두 차례의 심화교육까지 받았지요. 희망키움뱅크에 저리대출을 신청할 때는 애견 커플룩 맞춤 제작이라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통과됐어요.”

지난 1월 창업자 자립 역량 강화를 위해 1박2일간의 교육을 받은 전씨는 “엑기스만 뽑아 배웠다”며 소감을 말했다.

 

“교육을 받으면서 마음가짐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예전의 교육은 기본적인 소양만 가르쳤고, 이미 지나간 자기 경험담이나 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강의시간에 졸기도 했어요. 이번엔 단 일초도 다른 데로 눈을 돌릴 수 없었어요.”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부분을 물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업계획서는 자금 지원을 신청할 때만 작성하는 게 아니래요. 실제로 영업을 하면서 고치고, 사업 목표도 새로 세우고, 종업원 교육을 어떻게 체계화할지 부단히 다시 써야 한 대요. 현장에서 부딪히는 자영업자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얘기들이었어요. 이 프로그램이 아직 정례화된 것 같진 않은데, 창업 이후에도 꼭 이뤄졌으면 합니다.”

 

마케팅에 대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전단지 뿌리는 데 인건비까지 합쳐서 800만원은 든다고 하더라고요. 늘씬한 여성 내레이터를 불러서 하는 이벤트도 실속이 없기는 마찬가지고요. 정말 찾아올 고객에게 사장이 직접 무료 쿠폰을 돌리는 편이 더 낫대요. 우리는 인터넷 애견 카페를 집중 공략하기로 했어요. 오픈하기 전에는 보름 동안 지인들을 불러서 음식이나 인테리어 등에 고칠 점을 점검받고, 그 뒤에 일반 손님을 받을 생각이에요.”

 

함께 교육받은 참여자는 기존 창업자들이었기 때문에 막 영업을 준비 중인 전씨는 첫날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 변화는 그날 저녁 시간에 왔다. 뒤풀이 겸해서 희망키움뱅크의 지원으로 앞서 창업한 사람의 고기 집에 견학을 갔다. 함께 식사를 하고, 사업 경험을 나누면서 전씨도 대화에 열중했다.

 

“점포 문을 연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다는데 손님이 많더군요. 그 집도 가족끼리 영업을 해서 그런지 열의가 느껴지고 서비스가 친절했어요. 저도 아들과 함께 창업하는 터라 용기를 얻었죠. 참, 간판 때문에 고민이었는데 고기 집 사장님에게서 저렴한 디자인업체까지 소개받았어요.”

 

이틀째 난상 토론 과정에서도 에피소드가 있었다.

 

“평창에서 막국수 집을 하시는 분은 장사가 안 되어 고민이었어요. 전통 방식을 고집해 육수까지 본인이 직접 만든다고 해요. 끝까지 막국수를 만들겠다고 뜻을 굽히지 않으셨죠. 저는 양평에서 먹었던 도토리 정식집 얘기를 했어요. 코스 요리 식으로 나오는데 부담 없는 가격이었죠. 제 아이디어에 강사도 칭찬을 하시고, 그 분도 고개를 끄덕이며 전업을 고려하셨어요. 사업은 자존심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하는 것이잖아요.”

 

남에게는 제대로 된 조언을 하지만 전명희 씨는 본인의 사업이 어떻게 될지 조마조마하다. 사업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된다고 한다. 개업 준비만 두 달 이상 걸렸고 시장 조사도 철저히 했지만, 교육 소식이 들릴 때마다 시간을 쪼개 참석한다.

 

“큰돈은 못 벌어도 마니아층이 있어서 망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해요. 이 일이 잘 돼 장애인의 사회 참여에 보탬이 되길 바라요.”

 

어릴 때 전씨는 국립재활원에서 소아마비 수술을 받고, 자립을 위한 양장점을 열면서 정부와 사회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남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머리에 각인됐다고 밝혔다.

 

“지금도 행정안전부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요. 장애인 가정을 방문해 일 대 일로 컴퓨터를 가르치고, 강의실에서 교육도 진행합니다. 하지만 2년 동안 열심히 가르쳐도 장애인 분들은 컴퓨터로 오락이나 화투, 게임만 하고 있었어요. 국가가 세금을 투입해 무료로 교육해 주지만 장애인들은 기술을 활용할 기회가 없는 것이죠.”

 

장애인 교육과 노동을 어떻게 접목시킬지 전명희 씨는 고민이 많다고 한다.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도 강아지 옷은 앉아서 만들 수 있다는 데서 애견카페도 시작했다는 것이다. 몇 십 년간 마음에만 품던 구상을 차차 실현하는 중이지만 “돈은 없고 생각은 많아 골치 아프다”고 말한다. 그 점에서 교육생에 대한 사후관리도 절박하다.

 

“창업 후 5년 동안 컨설팅을 해주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사업이 잘못되면 정부는 서민들에게 돈을 주고서도 신용불량자만 양산하는 꼴이잖아요. 한 번 방문하시더라도 내 일처럼 사업장을 봐주시고, 기관에서도 중간 중간에 집중교육을 꼭 해주셨으면 해요. 시장의 트렌드를 알려주고 교육생끼리 연결하는 통로 역시 마련되기 바랍니다. 1인당 대출금 한도도 더 늘어났으면 하고요.”

 

마지막으로 전명희 씨는 “교육생 분들이 귀한 영업시간에 문 닫고 오신 만큼 배운 내용을 잘 활용하셨으면 한다”며 “나랏돈을 받은 만큼 부자 되도록 잘 쓰시라”고 덕담을 했다. 인터뷰를 마친 전씨는 다시 영업 준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