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망이야기

[헬로 협동조합법] (2) 매국노 경제에서 애국 공동체 경제로

사회투자지원재단 2012. 1. 31. 11:29

 

지역의 필요에 응답하는 하나의 방법인 사회적경제를 촉진하고 지원하고 있는 사회투자지원재단은 2012년의 중요 사업 테마를 "지역"과 "협동조합"으로 정하고, 관련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이며, 한국에서는 2011년말에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프레시안은 사회투자지원재단과 공동으로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의 경과와 주요내용, 의미와 기대, 그리고 사회적경제의 풀뿌리 현장에서의 협동조합운동을 촉진하기 위한 활동을 모색해보는 6회의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편집자주>

 

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 공동대표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생각과 가치로부터

지난 2011년 12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었다.

1년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서 새로 제정-개정되는 법은 뭐 이런 것까지 법으로 다 만드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다. 2008년부터 시작된 18대 국회에서 지금까지 접수된 법률안은 총 1만3732건이나 된다. 이 가운데 가결 처리된 법은 2243건, 부결된 법률안은 7건, 폐기되거나 철회된 법률안은 4839건, 미처리(계류)된 법률안은 6643건이다. 물론 대부분 개정 법안이다. 그러나 이런 무수한 법 가운데 장차 한국 사회를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재편할, 세상을 바꾸는 법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런데 한국 경제와 사회를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바꾸게 될 그런 법이 바로 다름아닌 협동조합기본법이다. 이른바 자칭타칭 주류 언론이라 불리는 신문 방송 어느 곳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에 대해 보도를 하지 않았다. 이는 한국의 주류 언론이 얼마나 기득권과 보수-진보 이데올로기 우물안에 갇혀 떨어지는 꿀 맛만 핥으면서 세상의 변화에 무지한 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상은 늘 새로운 가치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수명을 다한 기존의 낡은 체제는 늘 새로운 대안생각과 사상이 새싹을 틔우면서 숲의 지도를 바꾸기 시작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모든 정치경제 사회운동은 문화운동이다.

협동조합기본법은 협동조합운동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 새로운 사상과 가치를 심는 거대한 묘목장의 역할을 할 것이다. 이제 새로운 세상을 여는 새로운 문화운동의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경쟁과 전쟁에서 협동과 평화의 시대로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유일무이한 가치로 강요된 것은 오직 경쟁과 경제성장뿐이었다.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신화는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을 지배했고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까지 점령해서 내면화시켰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중이다. 오히려 넘치는 풍요를 주체하지 못해 비만과 성인병이 사회문제로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1948년 한반도에 최초의 근대 국민국가가 탄생되던 해의 한국인들의 생활 수준과 지금을 비교하면 정말 천지가 개벽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소득은 60달러 수준에서 2만 달러로 무려 700배 이상 높아졌다. 총발전량만 해도 1948년 694GWh에서 2010년 47만4660GWh로 684배가 늘어났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소득은 6000원 대에서 600배 이상 올라 월 400만 원 대에 육박하고 있다. 무역규모도 1948년 2.3억 달러에서 4000배가 넘는 1조 달러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한 마디로 한국은 지금 단군 이래 최대의 풍요를 매일매일 잔치를 벌이듯 마음껏 누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같은 극단의 풍요 속에서 99.9%의 대다수 인민들은 나날이 극단의 양극화와 빈곤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에게는 어떤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도 제공되지 않는 상태에서 내일이면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물론 없다. 한국 사회는 이웃의 죽음도 철저히 외면할뿐더러, 나아가 내가 살기 위해 이웃을 죽이는, 철저히 모래알로 흩어진 죽음의 사막사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의 이런 풍요는 절대로 지속불가능하며 조만간 한국경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경쟁과 전쟁, 성장과 발전의 시대는 삼풍백화점처럼 허망하게 붕괴되고 말 것이다.

이런 풍요를 가능하게 했던 값싼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와 거의 모든 천연자원이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생산 정점(피크오일)에 대해 부정으로 일관하던 국제에너지기구도 2011년에는 재래식 석유는 이미 2006년에 생산정점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치를 발표했을 정도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과 쿠바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덤으로 조만간 끔찍한 식량위기 또한 한국을 덮칠 것이다.

사막사회에서 살아나기 위해서는 사막을 탈출하든가 아니면 사막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 탈출할 때도 나무를 심을 때도 이제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협동과 평화이다. 서로 힘을 합해 상부상조해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이다.

우리는 이제 살기 위해서라도 경쟁과 전쟁, 성장과 개발을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려야 한다. 그리고 협동과 평화의 협동사회경제, 푸르른 숲의 공동체 사회 가치를 선택해야만 한다.

경제활동의 자유와 창의는 자유인들의 연합체인 협동조합에서

대한민국 헌법은 한 번도 자본주의를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고 밝힌 바가 없다. 물론 사회주의도 아니다. 대신 헌법은 경제활동의 자유와 창의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으며, 국가가 시장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는 경제민주화 원칙을 명시해 놓고 있다.

헌법 제119조
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자유인들의 연합체'이다. 자유인들이 어떤 외부 지원이나 자선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서로 연대 연합해서 자립자치의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이루어내는 것이 협동조합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경제활동의 자유와 창의를 가장 잘 실현하는 곳이 다름아닌 협동조합인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가장 잘 실천되는 현장이 협동조합이다.

구소련이나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독재체제가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협동조합운동을 억압하고 씨를 말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자본주의 기업의 노동자란 엄밀히 말해 자유를 빼앗긴 노예들이다. 솔직히 생산직이건 사무직이건 직장을 다니고 있는 한국 노동자들 가운데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고 있는 월급쟁이가 몇 명이나 될까. 그러나 협동조합은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자유로운 영혼들이 살아서 숨을 쉴 수 있는, 자유가 충만한 삶의 현장이다. 협동조합 경제는 연대의 힘으로 노동자들이 자본을 고용하는 놀라운 경제체제이다.

▲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
협동조합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건드리지 않는다.
강탈하지 않는다.
사회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을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
비밀결사를 만들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않아도 된다.
폭력에 빠지지 않는다.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다.
자존감을 다칠 일이 없다.
공짜로 받거나 특혜를 구하지 않는다.
게으른 자와 거래하지 않고, 근면한 사람과의 신뢰를 깨뜨리지 않는다.
구걸하거나 비열하거나 무례하지 않다.
협동조합은 자조와 자립이다.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으로 정당한 자기 몫을 누린다.

(George Jacob Holyoake, 협동조합의 역사, 1906)
- 스테파노 자마니-베라 자마니 지음, 협동조합연구소 옮김,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 북돋움, 2012.

뼛속까지 친미 친일의 매국노 경제에서 애국의 공동체 경제로

자본주의를 당연한 '경제인'들의 대체불가능한 경제체제로 받아들이는 대부분의 한국 경제학자들이나 기업가들은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그저 소수의 빈곤층들이 꼼지락거리는 일종의 일탈 정도로 여기고 만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야말로 수천년 동안 인류가 지속해 온 시장경제의 희귀한 일탈이자 예외라는 사실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이제 반드시 극복해야 하고 폐지하지 않으면 한국경제 자체를 망하게 만들고 모든 인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마는 '악마의 맷돌'일 뿐이다.

사실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경제개발계획은 미국이 입안하고 미국이 실행을 강요하고 미국이 지원한, 일종의 트루먼 쇼였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던 비동맹그룹과 제3세계의 사회주의 혁명을 봉쇄하기 위해 자본주의 개발과 성장의 시범국가가 필요했고 그 최적의 대상이 한국이었다.

당연히 미국은 미국 자본주의의 이익이 철저하게 관철되는 경제구조를 한국에 이식하였다. 군사쿠데타 직후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에게 당시 미 국무장관이던 러스크가 요구한 것은 한국의 에너지와 농업정책 개편이었다.

한국은 이제 자본주의 성장과 개발의 시범국가를 넘어 기적같은 성과를 보인 대표 국가가 되었다. 그 댓가는 일제 친일파를 대체한, '뼛속까지 친미'하는 친미 매국노들의 한국의 정관계를 비롯하여 군대, 언론계, 교육계, 문화계 등 거의 모든 분야 장악이다.

최근 폭로된 위키리크스의 한국 관련 비밀 외교문서를 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주도한 한국의 외교통상부 관료들은 한국을 위해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위해 협상하는 것을 미국 정부에 서로 자랑하기까지 하고 있을 정도이다.

수십년 동안 한국 인민들이 피땀흘려 일구어 논 경제성장의 성과를 단 한 순간에 미국 월가의 투기꾼들이 몽땅 다 도둑질해간 것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 사태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이를 제도화해서 한국의 부를 미국에 몽땅 갖다 바치는, 그야말로 을사늑약과 똑같은 조약이다. 언제까지 이런 친미파들의 매국 경제에 노예처럼 신음하면서 살고 있을 것인가.

다가오는 기후변화와 자원고갈, 그리고 경제 붕괴와 식량위기의 쓰나미를 극복할 수 잇는 대안은 오직 협동과 연대의 공동체 경제 뿐이다.

협동조합기본법은 이제 이런 상부상조의 협동사회경제로 나아가는 전환의 길에 멍석을 깔아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협동의 사회로 나아가는 협동조합운동은 우리들 '자유인'들의 몫이다.

자유와 창의의 연합주의와 기업가정신, 이것이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이다. 오늘날 청년백수니 비정규직이니 참으로 가슴 쓰리게 하는 언어들로 날이면 날마다 젊은 청춘들은 맥이 빠진다. 그러나 아무리 스펙을 쌓아 자본주의 기업의 노예가 되고 싶어도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는 이상한 세상에서 경쟁을 통한 해결책은 그저 지옥일 뿐이다. 이제는 전혀 다른 가치와 세상을 향해 눈을 뜨는 길밖에 없다.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패배자들과 열등한 젊은이들이 살 길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우애와 환대의 협동조합운동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본 칼럼은 프레시안과 공동으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