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소식들

‘묻지마’ 아파트 사업에서 지켜낸 우리 동네

사회투자지원재단 2009. 3. 4. 14:39

‘묻지마’ 아파트 사업에서 지켜낸 우리 동네

유기농 학교급식 실시, 화상경마장 건설 반대, 유전자 조작 농산물 안전지대 선포

…협동조합 발달한 원주, 지역공동체 살리기와 풀뿌리 민주주의 활발

 

한 지방자치단체가 저소득 취약계층이 사는 마을에 아파트 건설계획을 추진했다. 마을의 수는 11개에 달했다. 주민들은 거리에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이때 한 협동조합 단체가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아파트 건설 반대운동에 나선 협동조합 단체는 건설교통부(현재 국토해양부)에 질의서까지 보내 지자체의 계획이 불법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주민들은 살 집을 지켰다.

 

이 단체가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이하 원주협운협)다. 이처럼 강원도 원주 지역에서 협동조합 활동은 지역공동체 살리기 운동으로까지 발전한 상태다. 지역 어린이들에게 유기농 급식을 하고, 건강과 노인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싹을 키운다. 

 

[[ 이 지역 협동조합의 역사를 소개하는 원주협운협의 최혁진 정책위원장. “사회적 가치 실현과 풀뿌리 민주주의 활성화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13개 회원단체와 2만 회원 가진 중견조직

 

원주협운협의 최혁진 정책위원장에 따르면 이 단체는 현재 13개 회원단체와 2만여 회원을 거느린 어엿한 중견 조직이다. 그중 많은 경우가 신용협동조합에 속해 있고 생활협동조합(생협)은 약 8500~9000가구쯤 된다고 한다.

 

이밖에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의료생협 및 노인생협, 상지대 생협 등 교육관련 생협, 가톨릭농민회, 농산물 생산 및 가공업체, 실업·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활센터와 마이크로크레디트(서민을 위한 장기 저리 대출기관) 등을 아우른다.

 

최 위원장은 “두 개의 마이크로크레디트 대출기관 중에 누리협동조합의 경우 자활 참여자를 대상으로 100만원의 소액대출을 하며, 갈거리 협동조합은 노숙인에게 빌려주고 있다”며 “대출 부실은 1건 정도”라고 말했다.

 

사실 원주의 협동조합 운동이 이 정도 규모로 발전하기까지에는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다음은 최 위원장의 말.

 

“1968년부터 시작된 원주 협동조합 운동은 1990년대까지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지역의 젊은 활동가들이 연구모임을 결성하고 1년 동안 세계의 협동조합 운동 추세 등을 공부했어요. 2003년에는 밝음신협, 원주한살림, 원주생협 등이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결성했습니다.”

 

당시의 쟁점은 협동조합의 시장경쟁력(영리성) 강화와 공동체 운동(비영리성) 사이의 조화였다고 한다. 최 위원장은 “2001년부터 일본 생협과 교류하면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 사회투자지원재단이 진행한 원주 지역 탐방에 앞서 찰칵! ]]

 

일본 농민들 “농약 쓰더라도 조합원 딸기 먹겠다”

 

“일본 생협은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긴밀하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일본의 한 딸기 생산 조합원이 회의에서 ‘유기농 생산을 고집하느라 농약을 못 쳤고, 그 결과 생산량의 절반이 사라졌다’며 호소했죠. 다른 조합원들은 ‘딸기가 죽으면 약을 쳐야지 왜 혼자 책임지려 하느냐’면서 ‘농약을 쓰더라도 딸기를 살 테니 함께 가자’고 하더군요.”

 

최혁진 정책위원장은 “우리는 유기농에 주력하고 있지만, 협동조합 내에 강한 연대의식을 만드는 일본 사례가 깊은 인상을 줬다”고 말했다. 결국 원주협운협은 협동조합 네트워크 구축에 힘썼다.

 

“원주협운협은 먹거리, 금융, 복지, 의료, 교육 영역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각각은 시장 경쟁력이 부족하지만 네트워크를 통하면 종합적인 발전이 가능하죠. 공동신문을 만들어 조합원은 물론이고 일반시민과 회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홈페이지 네트워크를 통해 한 협동조합이 올린 글을 모든 단체가 공유할 수 있게 합니다. 기본 조회 수가 500~600회 정도는 되죠.”

 

지역사회 살리기 운동도 펼친다. 앞서 말한 아파트 건설계획 반대운동이 그중 하나다. 원주시 인근에 진행 중인 화상경마장 건설을 저지하려 하고, 일본 오사카지역의 키라리 생협연합회와 함께 지역 내 유전자 조작식품(GMO) 안전지대 선포식을 가진 것도 좋은 예다.

 

2005년부터는 원주시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유기농 급식을 제공하기 위한 학교급식 조례 제정운동을 펼쳤다. 그 결과 올해부터 지역의 읍·면 초등학생들은 원주생협의 농민들이 생산한 유기농 쌀을 급식하고 있다. 이 단체는 현재 원주 공공급식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며, 이를 바탕으로 동 지역의 초등학생은 물론 공공시설에까지 유기농산물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다음은 최 위원장의 말.

 

“학교급식운동은 단순한 식자재 납품 사업이 아니라, 로컬푸드 운동(지역의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운동)의 일환으로 정착시키려 합니다. 지원팀을 운영해 생산기반을 구축하고, 친환경 농민 생산조직까지 만들 예정입니다. 감자처럼 저장성이 높은 품목을 생산해 가공공장을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죠.”

 

사회적 협동조합 운동과 풀뿌리 민주주의 활성화에 노력할 것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는 사회적 협동조합 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비전을 모색하고 있다. 최혁진 정책위원장은 “노동자 협동조합을 바탕으로 기존의 신협, 생협, 농민 협동조합 등이 모여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면, 시장·국가의 대립에서 벗어나 제3의 영역(Sector)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로컬푸드 운동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성화에도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원주협운협은 협동조합뿐 아니라 다른 시민과 단체가 지역 발전에 대등하게 참여하도록 ‘원주 사회경제 네트워크’로 명칭을 변경하려 합니다. 또 협동기금을 만들어 사회공헌 경제조직을 뒷받침하고, 빈곤층뿐 아니라 사회공헌 기업 및 관련단체에도 대출에 나설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각 조합마다 수익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적립하고 있는데, 제대로 협의체가 출범하려면 2~3년은 더 걸릴 것으로 봅니다.”

 

단순한 협동조합 활동을 넘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동체 운동으로 발전한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 40년에 걸친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었다. <끝>

 

2009년 3월4일(수)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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