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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에서 일어서는 ‘쭈꾸미 대장금’ 아줌마

사회투자지원재단 2009. 3. 9. 10:55

빚더미에서 일어서는 ‘쭈꾸미 대장금’ 아줌마

남편 병환으로 망한 뒤 재기, 거래처·고객에 대한 고집과 신뢰가 성공비결 …

재료·밑반찬·조리법 다른 식당에 가르치고, 손님에겐 제대로 먹는 법 알려줘

 

부산에서 2년 넘게 쭈꾸미 음식점을 운영하는 강미옥 씨는 단골손님들에게 ‘강장금’으로 통한다. 드라마 ‘대장금’의 여주인공처럼 재료 선택부터 밑반찬·조리법을 꼼꼼하게 따지는 것은 물론이고, 손님들에게 제대로 먹는 법까지 까다롭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단골들이 모르는 사실은 두 가지다. 강씨 역시 대장금 못지않게 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있으며, 그만큼 남을 도우려는 열망이 강하다는 점이다.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 잔다는 강씨는 지난해 마이크로크레디트(서민용 소액 저리 대출) 전문가 양성과정을 교육받았고, 지금도 울산·포항까지 음식점 경영자문을 나간다.

 

과거 강미옥 씨는 7년 동안 한정식 집을 운영한 중산층 자영업자였다. 약 6년 전 건설업체 사장인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강씨가 8개월 동안 간병에 나서는 통에 손님이 뚝 끊겼다. 남편의 사업체는 부도가 나고, 강씨는 식당을 접어야 했다. 가게 원상복구비 1300만원과 권리금 1억5000만원을 몽땅 날리고 남은 것은 거래처 등과의 빚뿐이었다.

 

 

[[ 부산진역 근처에 있는 강미옥 씨의 식당 앞에서. 사업이 망한 후에도 강씨는 17년간이나 거래처를 유지하며 재기에 노력하고 있다. ]]

 

17년간 거래처 유지하며 빚 갚아

 

“5년 동안 여러 일에 종사하며 많은 빚을 갚았어요. 한정식 집을 하기 전에 호텔과 뷔페식당에서 일했는데, 그때부터 17년 동안 쌓아온 거래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오래된 인맥이라 저를 신용하고 대금 독촉을 심하게 안 했어요. 지난 명절 때는 한 거래처가 ‘선물 대신으로, 남은 채무를 탕감해주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어려운 처지의 강씨를 믿어준 거래처도 대단하지만, 강미옥 씨도 보통 신용을 쌓은 것이 아닌 듯했다.

 

“1993년부터 저와 거래하고 있는 재료상들은 지금도 호텔과 고급식당에 식재료를 대고 있는 곳들이에요. 저는 작은 쭈꾸미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재료 욕심이 많아요. 호텔에서 일할 때는 외골수에 가까웠어요. 당시 물품 담당 일을 했는데 업자들의 청탁을 일체 받지 않았어요.”

 

호텔의 식재료 담당자는 부정에 빠질 유혹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강씨는 업자가 상품권을 가져오면 모든 직원들에게 공개하고, 돈 봉투는 바로 돌려주면서 강력하게 경고했다. 식재료 문제로 거래처와 많이 다투고 반품도 잘했지만, 그만큼 떳떳하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다. 지금도 재료 구입에 많은 신경을 쓴다고 한다.

 

“농산물시장에 갈 때는 새벽 5시30분에 나갑니다. 버섯이나 양배추 같은 것은 신선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꼭 확인해야 해요. 새벽 세 시까지 영업을 하는데 시장에 갈 때는 하루에 한 시간밖에 자지 못해요. 쭈꾸미도 제가 정기적으로 맛을 봅니다.”

 

강씨는 “애기 아빠가 쓰러진 뒤부터 약 한 봉지 먹지 않고 하루에 세 시간씩만 자면서 일한다”고 말했다. 식당 아주머니 두 분을 종업원으로 뒀지만, 음식만큼은 자신이 직접 만든다고 했다.

 

“저는 고집이 남다르고 자신만의 요리 색깔이 있어요. 음식은 손님에게 예술로 보여야 해요. 눈으로 볼 때 먹음직스럽고, 냄새는 황홀하고, 먹을 때는 간이 정확해야 감동을 줄 수 있어요.”

 

3년 동안 밥 반공기도 못 먹게 한 여사장의 본심

 

간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강미옥 씨는 오랫동안 부산의 한 뷔페식당에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여사장은 유독 강씨에게만 3년 동안 밥을 제대로 못 먹게 했다. 반공기만 먹어도 밥그릇을 뺏어갔다. 강씨는 “내가 호텔 경험만 몇 년인데…”라며 서러워했다.

 

“그땐 몰랐지만 사장님은 저를 ‘간쟁이’(여기선 간 맞추는 사람)로 키우려 하셨던 거예요. 배가 부르면 간의 미묘한 맛을 못 보기 때문에 모질게 구셨던 것이죠. 그 뒤에는 캐나다 등 외국에서 요리를 공수해 와서 ‘똑 같은 맛을 내라’는 시험을 주시기도 했어요. 그 사장님은 지금도 제 멘토(Mentor: 정신적 지주) 같은 분이세요.”

 

사장님의 마음에 든 강씨는 한식, 일식, 양식 등 각종 요리를 섭렵했다. 맛이 모자란 요리는 쓰레기통에 직행했다. “조리할 때는 혼신을 담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만들라”고 가르침 받았다. 강씨가 대장금이라면 그 여사장은 드라마에서 대장금을 키워준 한상궁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사실 강씨에게 ‘강장금’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은 단골손님들이다.

 

“처음엔 손님들이 저를 무서워했어요. 저는 주방에만 있다가 보니 손님 대하는 법을 몰랐어요. 그래선지 손님들에게 쭈꾸미 먹는 법까지 가르쳤어요. 위염과 위궤양에 좋은 양배추·피클, 철분이 많아 빈혈 치료를 돕는 깻잎과 함께 싸먹으라고 놔두면 쭈꾸미만 따로 드시더라고요.”

 

강씨는 “내가 하도 뭐라고 하니까 손님들이 ‘얄궂은 아주머니’라고 말하더라”고 했다. 이제 강씨는 잘 웃는다. 매일 거울을 보며 인사법을 연습했다고 한다. 지난해 6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번 마이크로크레디트 전문가 교육을 받으러 갈 때는 “목요일엔 공부해야 하니 저녁때까지 제가 없더라도 섭섭해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손님들은 “그래도 사장님이 없으니까 아쉽더라”는 반응을 보였단다.

 

마이크로크레디트와 강씨의 인연은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고급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무렵, 동료가 신문기사를 보여줬다. 소액저리대출기관인 사회연대은행에서 삼성생명의 기금을 받아 서민의 창업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강씨는 용기를 내어 응모했고, 4박5일간의 교육을 받았다. 서울에서 2만원을 받고 자신 있는 요리를 만들라는 테스트도 받았다. 아구찜과 알탕을 만들어 합격했다. 지금의 식당 자리에서 20일간 시간대별·요일별 유동인구와 손님 유형을 분석했다.

 

 

[[ 강씨의 메뉴. 서울의 유명한 쭈꾸미 집에서 영감을 얻었다. 강씨는 부산 사람 입맛에 맞게 소스를 다시 개발했고, 한 개뿐이던 메뉴도 네 개로 늘렸다. ]]

 

결국 강씨는 사회연대은행에서 1500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친척의 도움을 합쳐 ‘쭈꾸美(미) 장터’라는 식당을 오픈했다. 수익은 제법 났지만 채무 상환과 친척 지분을 빼면 강씨의 수익은 많지 않다고 한다. 요즘은 불경기 탓에 손님이 더 줄었다.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 도움 갚다가 전문가 과정 지원

 

그동안 강미옥 씨는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이 지원한 가게들을 찾아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포항과 울산에도 다녔다. 잘 되지 않는 가게는 무엇이 다를까?

 

“경기 탓도 있겠지만, 일관성이 없고 눈앞의 이익 때문에 편법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정량대로 음식을 내지 않고 조금씩 적게 주는 식당도 있어요. 차라리 양을 많이 주면 손님이 금방 알아차리고 더 올 텐데요. 제가 가르친 대로 하지 않고, 값이 싼 양념을 사용하는 가게도 있어요. 그러다가 문을 닫는 경우가 몇 건쯤 됐어요.”

 

강씨는 한 달에 한 번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의 경영 자문을 받는다. 다른 식당에 조언하는 것은 그런 도움에 보답하기 위함이다.

 

“원래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아나 독거노인을 씻기거나 빨래 해주는 일도 했죠. 이런 도움을 받다가 보니 저도 관련 업무를 하며 자활공동체와 협력하고 싶었어요. 그때 마이크로크레디트 전문가 교육을 추천 받았죠.”

 

2008년 7월~12월의 6개월 동안 교육을 받고, 올해 사후교육도 받았다. 강씨는 “그동안 다른 가게를 도우러 가도 음식에 대한 지적만 했다”며 “교육을 통해 서류심사, 일일매상고 작성, 매출분석 등을 구체적으로 배웠다”고 했다. “내 시간의 80%는 장사하는 데 쓰더라도 20%는 남에게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그동안 수업 받은 역량을 써먹고 싶어요. 주변에 경영 지도를 나가고, 가난한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들이 제 지식을 계속 활용하게 도와 주셨으면 해요. 부산지역에도 관련기관이 늘어나 제가 아르바이트 식으로라도 일했으면 합니다.”

 

강미옥 씨에게 개인적인 소원이 있다면 가게 규모를 더 늘리고 친척 지분을 정리해 자신의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다. 마이크로크레디트도 대출규모와 대상이 늘어나서 기존 이용자에게 운영자금이 지원되고, 덕분에 자신 같은 서민들도 성장해서 기부하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고 강씨는 밝힌다. 잘된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강미옥 씨의 경험담과 인생관이었다. <끝>

2009년 3월9일(월)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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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투자지원재단은 신나는조합, 사회연대은행, 한국창업교육협회와 함께 보건복지가족부의 후원으로 마이크로크레디트 전문가 양성과정을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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