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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경력사원, 은행 문을 박차고 나온 이유

사회투자지원재단 2009. 3. 5. 11:33

30년 경력사원, 은행 문을 박차고 나온 이유

서민 위한 소액대출기관 만들고, 복지재단 설립해 저소득층에게 창업·금융 상담

…무일푼 보험아줌마, 고리대에 신음하는 새터민, 월세 연체한 일가족 도와

 

30년 동안 은행에서 일한 이원재 씨는 2007년의 어느날 직장을 때려치웠다. “거의 모든 대출업무를 맡아봤다”는 이씨가 구조조정 때문에 퇴사한 것은 아니었다.

 

“은행원 시절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 금융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유층과 달리 빈곤층은 정보가 없고 신분상승의 기회가 부족해 좌절을 겪기 쉽죠. 이 악순환을 막고 싶었어요. 퇴사한 뒤 마이크로크레디트(서민용 장기저리 대출기관)의 일종인 천사은행을 운영하며 저소득층에게 생활자금 등을 대출했습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교회 장로로 일해온 이씨는 “서민대출기관 설립으로 노벨상을 받은 유누스 박사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회를 통해 지원사업을 해왔다”고 밝혔다. 은행원 시절부터 소년원, 고아원, 학교 등에서 금융교육도 했다. 저소득층일수록 경제교육의 기회가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보는 빈곤층 구제란 이런 것이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렵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처럼, 빈곤층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신분 상승이 불가능합니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계층에게 경제교육이 필요해요. 앞으로도 교육과 경제·금융에 관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이원재 씨가 2007년 세운 천사은행은 정부 지원 없이 운영되는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이다. 천사은행 설립과 함께 해피월드라는 복지재단도 만들었다. 전문 컨설턴트, 소상공인 전문지도자 2명이 같이했다.

 

“예전부터 교육 활동과 함께 교회에서 재무·채무·창업 상담을 했고 필요할 경우 개인파산 제도도 알려줬죠. ‘천사본부’라는 모임을 통해 저소득층 구제운동을 펼쳤어요. 이처럼 복지 관련 일을 하다가 업무와 재원의 다양화가 필요해 해피월드와 천사은행을 설립한 것이죠.”

 

천사은행은 위기 상황의 빈민을 대상으로 긴급대출사업을 시작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마이크로크레디트 운영기관 지정도 신청했다. 천사은행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사례로 이씨는 탈북자 가정과 보험업에 종사한 아주머니 등 두 가지를 꼽았다.

 

이씨가 도와준 보험 아주머니의 경우 금융권 출신의 남편이 채무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사실상 무일푼 상태였다. 월세 보증금이 없어 길거리로 쫓겨날 신세였다고 한다. 천사은행은 보증금 200만원과 노트북 컴퓨터 구입비용 200만원 등 합계 400만원을 빌려줬다.

 

“아주머니는 삶의 의욕이 강해 제가 보기에도 성공할 것 같았어요. 근데 아주머니가 동료의 노트북을 빌려 영업을 하시는 거예요. 노트북만 있으면 잘 되겠다 싶었죠. 대출받은 이후 아주머니는 보험 영업으로 한 달에 400만~500만원씩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새터민의 경우는 1000원샵에서 이른바 ‘땡처리’ 물건을 팔고 있었다. 사채업자에게 1000만원을 빌려 한 달에 5부 이자(연 60%)를 썼다. 매달 원리금 약 84만원을 지급하면 남는 게 얼마 없었다. 역시 천사은행의 도움으로 사채 빚을 갚고 새 출발에 성공했다. 이씨는 이런 사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소액대출에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역할 필요

 

<사진설명: 지난 12월 빈곤층을 위한 무담보소액대출(마이크로크레디트) 전문인력 양성과정이 첫 졸업생 176명을 배출했다.>

“특히 3000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은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합니다. 수익이 적기 때문에 금융기관은 소액대출을 꺼리기 때문이죠. 제가 은행원 입장이라도 1억원의 자금을 100만원짜리 100개로 쪼개 빌려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관리비용이나 회수 문제를 따져야 하니까요.”

 

이원재 씨는 “어제 만난 아주머니도 참 사정이 안됐다”며 사연을 들려줬다.

 

“남편은 가출한 지 오래고, 애들은 3명인데 임대아파트 월세 연체로 쫓겨나게 됐어요. 우리는 경기도의 ‘위기가정 무한돌봄사업’(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법제도의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가정에 생계비, 주거비 등을 지원하는 사업)을 알려드렸고, 민간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상근비가 없는 상황에서 생계는 어떻게 유지할까?

 

“상담할 때면 창업·금융·법률 등 세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나서는데, 사실 곶감(퇴직금) 빼먹고 살고 있는 셈이죠.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겠죠. 생계문제는 복지계통에서 일하는 분들의 공통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가 신빈곤층인 것 같고… 정부에서 운영비가 나온다면 일정 도움이 되겠죠.”

 

이원재 씨는 지난해 사회투자지원재단 등 4개 단체가 지원한 마이크로크레디트 전문가 양성과정에 참여했다. 6개월간의 교육을 마치고 사후 교육까지 받고 있다.

 

“사후 교육과정에서 생업현장을 찾아가 대출 대상자가 주변과 네트워킹할 수 있도록 자문합니다. 떡볶이집의 경우 소스가 약한 듯하면 제가 떡볶이 전문가를 연계해 주고, 대출문제도 상의하는 것이죠. 일종의 마이크로크레디트 서포터(Supporter)인 셈입니다.”

재원 마련이 문제다. 이씨는 “정부에 마이크로크레티드 위탁기관 지정을 신청했고, 큰 교회를 중심으로 사회공헌활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급한 일은 신빈곤층에 대한 긴급대출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돕고 싶어요. 공정한 교육의 기회도 만들고 싶습니다. 지식, 돈… 많은 것을 나누고자 해요. 내 돈은 내 돈이 아니고, 나 역시 (지식과 돈의) 통로일 뿐입니다. 끝까지 쥐고만 있으면 이기주의밖에 남지 않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어 몇 배의 희망으로 키우는 것이 마이크로크레디트”라는 이원재 씨는 “해피 바이러스에 감염돼 일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필자 역시 행복해졌다. <끝>

2009년 3월6일(금)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투자지원재단은 인적자원과 사회적 자본의 투자를 통해 저소득층에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개발과 사회양극화 완화를 목표로 하는 비영리재단입니다. 연락처는 02-322-7020, 인터넷 홈페이지는 http://www.ksif.kr/ 입니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은 신나는조합, 사회연대은행, 한국창업교육협회와 함께 보건복지가족부의 후원으로 마이크로크레디트 전문가 양성과정을 운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