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님의 《도가니》와 비교한 오스트리아 사례
인터넷 다음에 연재된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가 책으로도 나와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무진이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청각장애인 학교의 교장과 교직원들이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 성폭행, 학대 등을 자행하고, 양심적인 선생님과 여러 사람들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정에서 학교 측과 맞서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하지요. 그 사실 관계를 들으면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만, 글을 읽기만 한 이로서는 무력하다 못해 멍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현실은 소설 못지않게, 아니 소설보다 가혹한 것이로군요.
이 소설에서는 학교 선생님들이 청각장애인 교육에 필수적인 수화조차 모르고,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둥 마는 둥합니다. 극히 일부라도 이런 곳이 존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오스트리아의 교육훈련 사례와 비교하려 합니다.
[[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 표지. ]]
청각장애인의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컴퓨터 교육 실시
오스트리아 남동부에 있는 슈티리아 지역의 청각장애인 협회는 ‘겟잇(Get it)’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청각장애인들의 직무능력 향상을 돕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청각장애인과 난청인들은 ‘유럽 컴퓨터 운용 자격증’(ECDL)이라는 IT 및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지요.
사업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청각장애인들은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직업훈련이나 각종 교육에서 배제되기 쉽습니다. 결국 대부분은 단순노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지요. ‘Get it’의 목표는 이들에게 정보처리 분야의 훈련을 실시해 노동시장에서의 적응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담당자의 말을 들어볼까요.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적절한 훈련과정을 진행하기가 힘들어요. 설사 한 분야를 끝마친다고 해도 비장애인과 경쟁하기 위한 여건이 열악합니다.”
다시 말해서 소설 《도가니》에 나오는 학교의 교육 방식은 수많은 저소득 빈곤 장애인을 양산할 뿐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문제의식 때문인지 ‘Get it’ 프로젝트에는 전문 직업훈련 교육기관이 참여했습니다. 어떤 식으로 교육이 이뤄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장애인 차별 금지법에 대한 안내 포스터. ]]
수화통역사와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 받는 소그룹으로 운영
훈련과정은 컴퓨터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일곱 과목의 수업 외에도 영어와 수학, 그밖의 전문교육을 포함합니다. 청각장애인들은 소그룹으로 나뉘고 오스트리아어 수화 통역사와 청각장애인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을 함께 받습니다. 소설 《도가니》에 나오는 장애인학교의 교육과정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요.
참여자 수는 2003년 16명에서 2004년에는 43명으로 늘었습니다. 훈련 과정은 총 아홉 달인데, 참가자들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시죠.
“참가자들은 훈련과정에 만족합니다. 특히 수화 통역사와 전문 트레이너의 활용, 소그룹 단위 구성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요. 그들은 배우기를 즐기고, 청각장애인용 교재를 통해 집에서도 기술을 연마합니다.”
담당자에 따르면 ‘Get it’의 컴퓨터 자격 훈련은 청각장애인 참가자들의 교육과 훈련에 관한 관심 증진은 물론이고 자신감 고취에도 도움을 줍니다. 참여자 중 일부는 현재 일하는 회사에서 더 높은 지위에 올랐고, 일부는 고용이 안정됐다고 합니다. 여러 기업이 추가 훈련 과정을 문의했다고 하네요.
현실의 총사업비 6억원 대 소설의 정부 지원금 40억원
18개월에 걸친 이 사업의 총 비용은 약 35만5000유로, 우리 돈으로 약 6억4000만 원입니다. 공지영 님의 소설에 나오는 장애인 학교는 연간 40억 원의 국고를 지원받는다고 그려졌습니다. 소설의 소재가 된 학교 역시 비슷한 수준의 정부 예산을 받았다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세금의 낭비가 아니라 장애인을 바라보는 학교재단, 나아가 우리 사회의 시각과 태도가 아닐까요. 소설 《도가니》에서 행정·교육·자선·사법·치안·종교 기관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까지 장애인을 왜곡된 시각으로 대하고 시혜의 대상으로만 생각합니다. 이런 현실이 소설 같은 비극을 낳았다는 생각도 드네요.
‘Get it’ 프로젝트는 청각장애인에 관한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는 활동도 돕고 있습니다.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지요.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비장애인에 비해 똑같은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조직의 유능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아요. 일반 사회에서뿐 아니라 공공기관에서도 그래요.”
희망인프라 담당자도 뜨끔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적입니다. 이처럼 편견으로 들끓는 우리 사회의 도가니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피와 땀과 눈물에 경의를 표합니다. <끝>
2009년 7월20일(월요일)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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