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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공공성, 저자 하승우

사회투자지원재단 2014. 4. 21. 17:47

“공共”을 통한 “공公”의 탈환 ― ‘개인․시민․공동체가 함께하는’ 공공성


신자유주의적 질서 및 경쟁과 효율성의 이념이 ‘공공성 公共性’을 공격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두 가치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철도 민영화 논란에 이어 의료 민영화 논란이 첨예한 상태이며, 대통령이 주재한 이른바 ‘규제개혁 끝장토론’ 이후 곳곳에서 규제완화의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공공 서비스 영역에서 영리화를 추구하면서도 ‘민영화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규제를 금기시하며 양적인 문제로 접근하는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공공성의 위기’다.


최소한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장치들을 국가가 나서서 무너뜨리고 있는 상황은 공공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공공성의 주체는 국가․정부인가? ‘나’를 버리는 것이 공공성인가?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의 이해관계가 뒤엉키고 기후변화와 식량, 에너지 문제 등 국경을 넘나드는 사안들이 많아지는 오늘, 공공성의 진정한 의미와 실현 방안은 무엇인가?


‘비타 악티바|개념사’ 시리즈 30번째 권인《공공성》은 우리 사회에서 ‘민영화’의 반대 개념, 국가 주도 등으로 협소하게 이해되어온 공공성의 참된 의미와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시민이 주체가 되는 공공성, 인간다움과 민주주의 회복에 기여하는 공공성의 이념을 탐색하는 이론적 차원과 더불어 협동조합․지역도서관․민중의 집 등으로 대표되는 ‘공공성의 장소’ 같은 구체적 논의로 실천적 의미를 확보하고 있다. 또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서구 공공성의 역사와 함께 서구와 근대국가 형성 과정이 다른 한국의 공공성 및 ‘식민지 공공성’의 문제를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공공성은 단순히 공적인 것만이 아니라 공동성의 과제를 안고 있으며, 따라서 국가가 공공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주체일 수 없다. 정부가 나서서(公)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지만 시민들이 함께(共)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는 만큼 때로는 정부 개입 없이 민간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할 때 공공성의 의미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 공공성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공적인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시민/공동체가 함께하는’ 공공성. 진정한 공공성의 의미와 실현 방안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하는 이 책은, 공공성이란 우리가 같은 세계에 살고 있음을 자각하고 같은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안을 함께 논의하며 민주적으로 풀어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자치自治, 공유화共有化, 공동성共同性의 관점으로 공공성을 재구성하라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로 정의되는 ‘공공성’은 ‘공동체의common’ ‘공적인official’ ‘공동의public’ ‘공개된open’과 같은 다양한 의미를 포함한다. 이 책은 ‘공적인 것’이라는 의미로 협소하게 인식되고, ‘사’를 버리는 것이 ‘공’이며 국가/정부나 공무원, 전문가가 공공성을 실현하는 주체라는 인식이 지배해온, 그간의 왜곡된 공공성 이해에서 한 걸음 나아가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공공성의 의미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


공공성은 어느 누가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결정에 영향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처럼 시대에 따라 새로운 의제가 사회의 관심을 받고 공공성의 화두로 떠오르는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 ‘과정’이 중요하므로 국가나 정부가 공공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주체일 수 없다. 역사를 살펴보면, 공공성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에도 우리 사회에는 공공성이 있었다. 걸립, 두레 등 공공성을 실현하는 활동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정부나 법률이 아니라 사람들의 연대와 관계와 문화였다. 자본주의와 근대 국가의 형성, 그리고 식민지 지배 체제가 전통적인 공공성을 파괴하거나 축소시킨 결과, 한국의 공공성은 정부가 주민에게 베푸는 시혜성 정책으로 대체되었고 시민이 주체적으로 함께 구성한다는 ‘과정’의 의미는 소거되었다. 이 책은 ‘누가 내게 무언가를 보장해준다’는 시혜적 관점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우리 스스로 논의하고 결정한다’는 자치自治의 관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 시대에 공공성은 공적인 것만이 아니라 공동성의 과제를 안고 있으며, 공공성의 반대말이 민영화民營化보다 사유화私有化에 가깝듯, 공적인 대안도 국유화國有化가 아닌 공유화共有化에 가깝다.” 공유화는 소유의 주체가 공동체이고 운영 과정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관리하는 주체를 기른다는 점에서 국유화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렇게 공공성에 대한 관점이 바뀔 때 실질적인 공공성의 재구성이 가능하다.


‘공共’과 ‘공公’의 조화 ― 공공성을 위한 ‘장소’를 만들다


이러한 공공성의 재구성은 달리 말하면 ‘공共’을 통한 ‘공公’의 탈환 또는 ‘공共’과 ‘공公’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만드는 공공 영역과 시민이 만드는 공공 영역이 힘의 균형을 이루게 하고 두 영역이 만드는 가치가 선순환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일본 생협운동가 요코다 가쓰미)는 의미다. 이러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면 시민 사회가 국가의 공공성 독점을 해체할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한다. 더욱이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고 주요한 공공 영역이 사유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와 시장에 대항할 수 있도록 시민 사회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을 감시하고 비판하면서 그 체계의 힘에 포섭되지 않는 자율적인 영역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책은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공공성을 위한 장소’를 제시한다. 공공성을 획일화하고 공간을 다스리려는 국가, 공공성을 사유화하고 공간을 벗어나려는 자본에 맞서 공공성을 재구성하려면 시민들이 자신의 뜻을 실현할 거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이러한 장소가 그것을 절실히 원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투쟁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팔던 ‘개방 센터’는 모임과 토론의 장이 되었으며, 유럽의 ‘민중의 집’은 흥겨운 여가 공간이자 운동․행동의 공간이다. 노동자들에게 상호 보험을 제공해온 공제조합, 자주성․상호부조의 이념과 함께 성장한 협동조합, 농촌 문화생활의 중심지가 된 ‘인민회관’(러시아) 등이 공론장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민주적으로 구성하는 토대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윤봉길이 조직한 위친계․월진회 및 야학과 독서 모임의 장소였던 부흥원은 한국판 민중의 집 실험이었다. 또 학교와 더불어 생협을 같이 운영한 풀무학교, 학교․공회당․금융기관․협동조합 등을 갖춘 마을을 구상한 안창호의 시도 등 1920~30년대에 지식인들이 만들고자 했던 이상촌은 학교와 협동조합이라는 두 기둥으로 구성되었다. 학교는 민중의 자각을 일깨웠으며, 협동조합은 민중이 살림살이를 이어가며 다른 사회로 전환할 힘을 모으는 기둥이었다. 일제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민중의 자발적인 힘을 조직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공공성을 실현하는 대표적인 장소로 ‘지역 도서관’을 든다. 많은 지역에서 공동체 주민들의 힘으로 도서관을 세우고 있으며, 이곳들은 단순히 책을 진열하고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주민들이 직접 관리하고 그 내용을 채우는 자치 공간으로서 역할을 맡고 있다. 


“자신의 삶을 살길 원하는 사람들이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라면 어느 곳이나 공공성을 강화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장소들은 공共의 힘으로 공公을 탈환하는 거점이 되었고, 이 거점은 단지 운동을 조직하기 위한 수단에 머물지 않았다. 그 속에서 삶이 이어졌고 인민들은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시민과 공공성 ― 인민에서 공중으로


공공성의 어원은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로, ‘공적인 것 또는 공적인 일’ 그리고 ‘인민의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로마에서 공공성은 인민이 모여 공적인 일, 공동체의 일을 함께 결정해나가는 과정을 뜻했다. 로마의 시민들은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중시했으며, 귀족들이 독단을 행사하면 단체로 로마를 떠나는 시위를 벌이는 등의 행동을 통해 법률 제정을 비롯한 공적 의사 결정에 참여함으로써 공공성을 실현했다.


중세에는 영주나 귀족이 공적 권한을 독점하고 인민은 공적인 장에서 배제되었다. 귀족과 영주들은 축제를 열어 가난한 농민들을 달랬는데, 하버마스는 이런 중세의 의례를 ‘공적인 과시’ 또는 ‘과시적 공공성’으로 파악한다. 과시적 공공성은 공론장을 구성하지 못했고, 근대 부르주아 사회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공공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중반부터 ‘공중public'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여론이 공공성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근대 부르주아 공론장은 공권력에 맞서 부르주아의 이해관계를 공적인 이해관계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발전되었으며, 시민은 다시 스스로를 공공성의 주체로 여기게 되었다. 이성과 법에 의한 지배를 내세운 부르주아 공중은 공공성에 참여하면서도 사적인 영역을 존중받길 원했는데, 이때 지금과 같은 공/사의 경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의 소멸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공론장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하면서도 사익과 공익을 분리하지 않았다. 또 이때 정치적 결정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 같은 영역에도 공공성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근대 국가와 공공성 ― 야경국가에서 복지 국가 거버넌스로


근대 국가의 토대가 된 홉스, 로크, J. S. 밀의 자유주의 사상은 공보다 사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정치적 인간을 경제적 인간으로 전환시켰다. 자유주의는 시민들에게 공과 사의 분명한 구분을 요구했지만, 자유주의 국가가 상정하는 공사의 구분은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에 미치는 영향력을 은폐하기도 한다. 반면 19세기에 출현한 사회주의는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진 현실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사회주의가 확산되자 자본주의 국가도 자본주의가 불러온 심각한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시민의 삶과 연관된 공공정책을 통해 사회 모순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야경국가에서 복지 국가로 이행하면서 공공사업은 크게 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공성 자체가 강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공성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또 복지 국가는 다양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회 모순을 해결했지만, 재정 위기와 시민 사회의 쇠퇴라는 문제를 초래하기도 했다.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복지 국가의 위기와 1990년대 이후의 정보화․세계화․지방화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 거버넌스governance다. 정부와 시민 사회가 협약, 협의, 관행에 따라 같이 약속하고 의논하고 정책을 만들며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거버넌스다. 궁극적으로 거버넌스는 시민 사회의 자치와 정부/시민 사회의 협치를 지향하고 공공성을 실현하는 국가 구조의 전환을 의미한다.


한국 공공성의 역사 ― 공/사에 대한 관념과 식민지 공공성


우리는 서구와 근대 국가 건설 과정이 다르고 식민지 경험을 한 우리는 공공성의 구성 과정도 서구와 다를 수밖에 없다. 동양은 중세 이전부터 법률로 국가의 영역을 규정짓고 확장해왔다. 고려시대부터 빈민 구제 기관과 의료 구제 기관이 백성의 삶을 돌보는 등 공공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 천리天理나 위민爲民 같은 개념을 통해 공공성이 실현되었다. 다만 이러한 공적인 사업들이 지배자의 판단에 좌두되었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높이 평가하기는 어렵다.


개화기 지식인들은 유학에서 무시되어온 사私의 가치를 살림으로써 근대적인 공론장을 만들고자 했으나, 이런 전환은 계몽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민중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반反민주적 성격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민과 백성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그들을 신민으로 계몽시키길 원했고 사의 의미에 주목했지만 이를 동포에 편입시키려 했던, 공공성에 대한 모순된 인식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더 뒤틀리게 된다.


식민지시기에 일제는 계몽과 근대화의 논리를 앞세워 폭력적인 공공사업을 벌였다. 이런 식민지 사회에는 공중이 구성될 수 없기 때문에 공공성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역사학자들은 ‘식민지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유학 사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공리公利 개념이 식민지 시기에 등장했으며, 3·1운동 이후 다양한 모임들이 공적 영역에서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되면서 다양한 공공성 담론과 공공 영역이 존재했으리라는 가정이다. 또한 식민지의 정당성을 부인하면서도 공익에 해당하는 공공사업을 환영하는 모순된 감정이 조선인들 사이에 퍼지는 등 공공 영역이 단순히 식민—피식민 관계로 단순화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단순히 복종과 저항의 이분법으로 파악하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공성의 문제를 협상이나 거래로써 공식적인 정치 영역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공공성은 정치만이 아니라 생계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식민지 공공성은 식민지 시기의 경제 변화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제국주의는 식민지의 자급 기반을 파괴해 정치적인 지배를 관철시켰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화나 경제 개발이 모두에게 더 좋은 것이라는 가정은 좌파와 우파가 공유하는 잘못된 가정이다. 그리고 식민지 공공성은 태평양 전쟁을 거치면서 식민지 주민들을 포섭하는 전략에서 동원하는 전략으로 변했다. 즉 일제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정신 및 순국 정신 앙양, 성지 참배, 후생 운동’ 등을 내세워 사회 전체를 규율하려 했다. 이런 문화에서 과연 공공성을 논할 수 있을까?


식민지 공공성이라는 개념은 그동안 논의되지 않던 회색지대를 드러내긴 했으나 그 회색지대가 당시 주민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었고 어떤 지향을 가졌는지를 드러내지는 못했다. 식민지 공공성의 정의에서는 공公이 부각되지만 공共이 드러나지 않는다. “절박한 문제를 서로 어떻게 소통하고 민주적인 가치를 실현할 것인가? 절박하고 부차적이라는 기준조차 누구의 판단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공공성이 단순히 서로에게 필요한 자원을 거래하는 과정인가?” 식민지 공공성은 이런 물음들을 남겨놓았다.


지은이 하승우는 고려대 정외과에서 석사학위를, 경희대 정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사회투자지원재단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교육공동체 벗, 땡땡책협동조합, 행복중심생협, 한살림의 조합원이기도 하다. 수도권을 벗어나 충북 옥천에서 자치와 자급의 기반을 닦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지은 책으로《민주주의에 反하다》,《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아나키즘》,《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아나키스트의 초상》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