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소식들

<기획취재 - 지역순환경제를 만드는 씨앗 '공동체 기금'(1)>지역을 살리는 돈 '공동체 기금'

사회투자지원재단 2015. 7. 7. 13:22

 

 

■ '공동체기금' 취재를 시작하며

 

지난 2007년과 2012년 각각 사회적기업육성법과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지면서 우리사회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적경제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같은 흐름은 우리고장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간 크고작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양한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들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지역사회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크지 않다. 여전히 낮은 지역사회 인지도, 열악한 재정구조, 영세한 사업규모, 공적 지원 부족 등 여러 이유가 꼽힌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은 사업을 운영하고 키워나갈 종자돈, 즉 자금 부족을 들 수 있다. 실제 많은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좋은 아이템과 훌륭한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도 '돈 문제'로 중도 포기하거나 퇴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옥천신문은 우리고장 사회적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공동체 기금'에 주목하게 됐다.

공동체 기금이란 지역사회의 여러 단위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지역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해나가는 방법을 말한다.

공동체 기금은 비단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앞으로 살펴볼 서울시 성동구 논골신협처럼 기존의 금융기관도 공동체 기금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사)경남고용복지센터의 디딤돌신용금고처럼 기관이 주체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개인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 은행 빈고처럼 기관의 힘을 빌리지 않은 개인들의 연대도 가능하다.

이들 공동체 기금은 작게는 사회적경제의 활성화를 추구하지만 더 넓고 본질적으로는 지역경제의 선순환 생태계 구축을 꿈꾼다.

이런 바탕 위에서 정부나 지자체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실업, 주거, 먹거리, 지역경제 살리기를 실현해간다. 우리고장에서는 아직 공동체 기금 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다. 그만큼 체감경기가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라는 연대의식이 사라진 마을은행


"사업 하다가 자금이 막혀서 한번 금융기관에 사회적기업으로 대출 상담 받으러 간적이 있는데 중간에 포기했어요. 준비해야 하는 서류도 많고 대표자가 개인회생이나 신용불량 상태면 안되고 이런 저런 제약 조건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대출은 포기하고 아는 분한테 돈 빌리고 사장님이 몇 달 동안 월급을 안 받아 가면서 어렵게 해결했던 적이 있어요."

우리고장에서 사회적기업을 꾸려가는 한 주민의 말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운영 자금이 막히거나 직원들 월급날에 맞춰 대금 결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럴 때 마음 편히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 물론, 지금도 은행이나 신협 등에는 여러가지 대출 상품이 있다. 하지만 든든한 담보가 있거나 확실한 신 용보증이 없다면 기존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는 쉽지 않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는 은행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 기존 금융기관들은 예대 마진을 통해 이윤을 남기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이나 기업은행 같은 지점은행들은 물론이고 우리고장에 본점을 두고 있는 농협이나 신협, 마을금고 등도 별반 다르지 않다. 농협, 신협, 마을금고는 상호부조에 바탕을 둔 협동과 연대에 그 존재의의를 두고 있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기존 은행과 차이가 거의 없다. 은행법을 비롯한 여러 법과 제도의 틀에 묶여 있어 지역적 특성을 담아낼 여지가 적고, 임직원 등의 운영주체가 협동과 연대의 정신을 실천할 의지도 발견하기 힘들다.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이유는 조합원들조차 그저 거래 은행으로 인식할뿐 농협, 신협, 마을금고의 뿌리를 잊은지 오래됐다는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우리 은행, 마을 은행, 공동체 은행'이라는 인식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사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동체 기금을 마련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 환원사업 확대에 그친 금융의 역할

하지만 변화의 싹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원새마을금고가 2012년부터 지역사회 환원사업을 활발하게 늘리면서 변화의 기운이 이웃 금융기관들로 조금씩 옮겨 붙고 있다. 이원새마을금고는 △2012년 7천500만원을 시작으로 △2013년 9천100만원 △2014년 8천640만 △2015년 4월 현재 5천만원으로 환원사업 규모를 늘려오고 있다. 그 사이 자산규모는 300억원에서 600억원으로 두 배 뛰었다. 지역사회 환원사업이 이익금 일부를 지역사회에 일방적으로 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금고의 수익 향상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금융이 먼저 손을 내밀면 지역사회가 어떻게 화답하는지를 보여준다.

박영웅 이사장은 "새마을금고의 근본정신도 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이익이 나면 당연히 지역사회와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와 함께 금고가 적은 금액이라도 환원사업을 꾸준히 하게 되면 결국 그 돈이 돌고 돌아 지역경제를 선순환 시키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하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환원사업과 금고의 수익 증대, 지역경제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구체적 수치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1년에 약 1억원 가까운 돈이 지역사회에 뿌려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는 어떤 식으로든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원새마을금고를 비롯한 지역금융권이 공익을 위한 경제사업을 거의 벌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같은 환원사업의 확대도 공동체 기금으로 가기 위한 한걸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원사업은 지역주민이 처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앞서도 밝혔듯 공동체 기금은 기관을 비롯한 개인들의 연대로 지역사회가 처한 여러가지 문제, 이를테면 주거, 실업, 빈곤, 창업, 취업 등의 현실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우리고장 금융기관들의 환원사업 확대는 그 자체로는 좋은 현상이지만 '좋은 일'을 한다는 이상의 의미는 발견하기 어렵다.

■ 은행, 그 이상의 은행이 필요하다

금융기관이라면 무엇보다 지역주민이 처한 경제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고장 금융기관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매우 취약하다. 예금과 대출 이외 지역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방법이나 수단,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하다. 서민들을 위한 소액 무담보 대출 같은 자체 상품도 갖고 있지 않고 지역사회 경제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공론장도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번 기획취재 후반부에 등장할 브라질 파우마스 은행은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각종 금융 및 경제 교육은 물론, 창업과 취업을 위한 여러가지 지원을 하고 있다. 은행이 직접 마을기업을 육성하기도 하고 지역사회 풀뿌리 경제 통계를 지도로 작성해 주민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인구 4만7천명의 빈민촌에서 만들어진 은행의 현재 이야기다. 다음 호에서 만날 서울 성동구 논골신협도 마을 생협을 키워내고 지역사회를 위해 마을 기금을 마련하는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은행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파우마스 은행과 논골 신협은 공동체 은행, 마을 은행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간다.

우리고장 신협과 마을금고도 서민을 위한 무보증 대출 같은 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엄격한 신용 평가에 따른 '증명된' 고객에 한해 해당할 뿐이다. 공공기관으로서 지역경제를 고민하는 책임의식은 발견할 수 없다. 지역사회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한 의지나 사회적 목적 등은 신용 평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옥천신협은 최근 신협 중앙회가 추진하는 사회적기업 지원을 위한 기금 조성을 위해 직원 1인당 월 3천원~1만원 정도의 회비를 걷기 시작했다. 신협 중앙회는 이렇게 전국에서 모은 돈으로 기금을 마련해 지역당 1~2곳의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지역이 만들고 키워야 할 사회적경제 씨앗을 신협 중앙회가 강제 모금으로 육성하는 꼴이다. 이런 움직임이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어려울까?

신협이 앞장서서 옥천 공동체 기금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떠냐는 제안에 정만영 이사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공동체 기금이라는 취지는 상당히 좋은 것 같다. 원래의 신협 정신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 수만 있다면 기금을 만들어서 지역사회 노인, 장애인 복지에 쓰였으면 좋겠다. 옥천신협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들과 연대해 지역주민을 위한 공동 서민 대출, 영세 상인을 위한 지원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제안에 이원새마을금고 박영웅 이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지금 지역사회 경기는 최악 중의 최악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원새마을금고가 환원사업을 늘리고 자산 규모가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것이 관계의 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는 개인들이 상당히 이기적이라고 하는데 아이러니 하게 이런 이기적인 시대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장사 수단은 인간관계다. 마을금고도 협동정신이라는 애초의 설립 취지가 많이 훼손됐는데 이런 문제 의식에서 지역사회 공동체 기금의 필요성을 공감한다."

파우마스 은행과 논골신협은 각각 경제 사정과 교육 수준이 매우 낮은 빈민가 판자촌과 서울 달동네 철거촌에서 시작됐다. 그에 비하면 우리고장은 조건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 기금 운영할 주민 조직이 필요하다' 사회투자지원재단 김홍일 이사장

   
▲ 김홍일 이사장

공동체 기금은 우리사회에서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은 2009년부터 꾸준히 공동체 기금 운동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 4회에서 만날 경남고용복지센터 디딤돌신용금고도 그중 하나다. 디딤돌신용금고는 지역의 실업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공동체 기금이란 무엇인지. 공동체 기금은 왜 필요한지를 김홍일 이사장에게 물었다.

 

■ 공동체 기금이란?

1998년 IMF가 되면서 전국적으로 실업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때 사회연대기금이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지금처럼 활발하지는 못했다. 사실, (공동체 기금 역할을 해야 할) 신용협동조합들이 초기에는 모두 빈민운동에서 시작됐는데 나중에 제도 금융이 되면서 변질됐고 8~90년대를 거치면서 맥이 끊겼다. 그러던 것이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이 활발히 추진되면서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공동체 기금이란 가난한 사람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공동체 기금은 그것을 모아내고 퍼져나가게 하는 것이다. 지금의 사회적경제 정책은 지나치게 일자리 중심이다. 하지만 저소득층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뿐만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여러 자금(교육비, 의료비 등)도 있다.

 

공동체 기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기금을 운영할 주민 조직이 있어야 한다. 기금을 함께 꾸려갈 믿을만한 파트너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그와 함께 지역사회가 필요한 수요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지역에 따라 필요한 수요도 다르다. 저는 30대 청년 세 명과 함께 살고 있는데 한명은 대안학교 교사, 한명은 시민단체 활동가, 한명은 박사과정 준비생이다. 이들 청년들이 서울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기에는 주거비가 너무 비싸다. 대안학교 교사는 월급이 120만원인데 집세 내고 나면 뭐가 남겠나? 이들에게는 함께 모여 주거비를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 기금은 각 지역이 필요로 하는 수요가 무엇인지에서 출발한다.

 ※ 김홍일 이사장은?

사회투자지원재단 김홍일 이사장은 성공회 신부로 1986년 서울 상계동 도시 빈민 운동을 시작으로 사회운동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노동자들과 '실과 바늘'이라는 노동자 협동조합을 직접 만들기도 했고 서울 북부 실업자 사업단, 사회적기업지원센터 소장 등 사회적경제와 관련한 실천적 활동을 이어왔다. 현재는 사회투자지원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은 옥천신문과 함께 '옥천 사회적경제함께 만들기'를 해온 파트너 기관이다. 

글 : 정창영 기자 (옥천신문사)

취재지원: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연합기획취재단: 옥천신문, 고양신문,충청리뷰,순창신문,태안신문, 사회투자지원재단

 본기사는 옥천신문의 동의하에 중복게재 한 것입니다. 일부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