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망이야기

옥천군에서 풀뿌리 사회지표를 만든 이유

사회투자지원재단 2016. 4. 2. 13:19





  통계는 통치를 위해 수집되는 정보이다(제임스 스콧의 <국가처럼 보기>). 그래서 주민은 통계의 대상일 뿐 통계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손에 쥔 정보가 없기에 항상 정부에 설득당하고 정책에 지배당한다. 주민은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사람일 뿐, 일자리가 부족하니 생태계를 파괴하더라도 기업이나 시설을 유치해야 하고 복지예산이 부족하니 불편해도 참아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렵다. 주민과 지역사회에 관한 정보임에도 통계는 주민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하고 정부의 서랍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가 필요할 때에만 밖으로 나온다.

  사회적인 가치는 구체적인 활동과 제도변화를 통해 실현된다. 주민들을 만나고 설득해서 활동에 동참하게 만들고 제도를 바꾸려면 가치 이전에 진단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진단을 위한 정보들이 정부의 서랍 속에 있다는 점이다. 똑같은 사실이라도 누구의 관점에서 측정하는지가 매우 중요한데, 지금은 그렇게 측정된 정보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점에서 정부의 정보를 해석해서 지역사회를 진단해보자는 것이 풀뿌리사회지표사업의 시작이었다.

  풀뿌리사회지표는 주민의 관점에서 옥천군을 이해하고 문제점을 파악하여 주민들이 대안적인 지역발전전략을 짠다는 원대한(?) 구상으로 시작했다. 기본적인 통계를 보면서 함께 얘기할 풀뿌리지표위원회도 각계각층의 주민 10명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집중해서 살필 8개의 대주제, 즉 인구, 경제, 교육, 복지, 문화, 사회적 약자, 대청호, 읍면불균형도 정하고, 연구팀이 통계를 모아서 가공하면 매달 열리는 지표위원회가 자료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갔고 올 2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옥천 이야기라는 작은 소책자가 발간되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부딪친 첫 번째 난관은 대부분의 공개된 통계가 중앙정부나 광역자치단체를 위한 것이지 기초자치단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통계청에 들어가 뒤져봐도 상당수의 통계는 광역자치단체 차원에 맞춰져 있고, 광역자치단체의 통계는 이런 중앙정부에 통계에 기반해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된지 20년이 지났어도 지방정부가 발로 뛰며 지역사회를 조사한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2년에 한번씩 조사되는 사회조사보고서가 지역사회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두 번째 난관은 기초자치단체에서 매년 발간되는 통계연보가 있어서 기본적인 통계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인구만 보더라도 중앙정부가 5년에 한번 조사하는 인구총조사와 제법 큰 차이를 보인다. 201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인구총조사의 옥천군 인구가 49,730명인데 옥천군 통계연보에는 54,725명으로 나와 있어 4,995명이나 차이를 보인다. 주민등록상 인구와 실거주 인구의 차이가 약 10% 정도이니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 난관은 주민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의 자료는 통계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 주민들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현상보다 인구가 줄어드는 이유를 알고 싶은데 그런 건 통계에 없다. 일자리가 부족하니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의료산업단지를 만들고 기업을 유치한다는데, 정작 그렇게 해서 어떤 일자리가 얼마나 늘어났는지에 관한 통계는 없다. 노인과 장애인은 계속 늘어나고 농촌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어려워진다는데, 피부에 와닿는 현실을 드러낼 자료는 거의 없다. 10명의 지표위원들의 이야기로 이렇게 잡히지 않는 부분들을 다루려 했지만 충족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난 뒤에는 그동안 다뤘던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방식이 고민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나눠보는 정보가 아니라 주민들이 정보에 접근하려면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정리되어야 할까? 어차피 통계가 뭔가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다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생각으로 숫자만이 아니라 설명을 담고 그래프로 표현하려 노력했다. 물론 소책자 한 권으로 애초의 의도를 실현하기는 어렵고 소책자를 들고 직접 주민들을 만나는 다음 과정이 필요하다.

  <아름다운재단>변화의 시나리오사업지원을 받아 진행되는 옥천군의 풀뿌리사회지표는 3년 사업계획의 첫 관문이다. 2016년에는 지역에서 가장 많은 자원을 동원하는 옥천군청이 그동안 집행한 예산을 분석해서 주민들의 필요와 얼마나 닿아 있거나 떨어져 있었는지를 분석한다. 2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주민신문 <옥천신문>에서 예산서의 수치로 표현될 수 없는 사업들에 관한 정보들도 얻으려 한다. 또한 지역의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해서 2015년에 논의된 지표들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안남면을 대상으로 군통계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던 면단위 주민들의 생활을 측정하려 한다. 이렇게 정리된 정보들은 다시 주민들과 소통되고 가능하다면 두 번째 소책자로 정리될 예정이다.

  그리고 대망의 2017년에는 이런 정보들에 기초해서 주민들이 대안적인 지역발전 전략을 구상하고 이를 구체적인 정책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주민들의 삶과 필요에 맞는 정책이 구성된다면, 2018년의 지방선거는 정치인으로 나선 사람들이 주민들에게 공약을 내세우는 선거가 아니라 주민들이 내건 정책을 정치인들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선거가 될 것이다.

  풀뿌리사회지표는 단지 정보를 모으고 지역사회를 이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의 권력관계를 바꾸려 한다. 그럴 경우 통계는 통치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저항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