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망이야기

사회적경제 기본법 파동이 지나간 후 (신명호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

사회투자지원재단 2015. 9. 8. 15:00

 

만들어지려다 미수로 끝났으니 실상 파동이랄 것도 없겠다.

어쨌든 작년 4, 여당이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발의한 이래, 여야 합의 통과가 기정사실화 돼오던 분위기는 유야무야되는 쪽으로 급반전했다.

완전히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물 건너갔다는 예측이 우세하다.

이런 예측에 신빙성을 더하는 것은 여당안의 대표발의자가 최근 대통령에게 밉보여 축출당한 비운의 정치인이라는 사실이다.

  한동안은 잠잠하겠지만 장차 언젠가는 사회적경제법의 제정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고, 또 그럴 필요도 있다. 그 때를 위해서라도 지난 1년여의 추진 과정을 성찰하고 교훈을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법 제정 움직임을 둘러싸고 사회적경제를 잘 안다고 자처하는 전문가와 활동가 및 관계자들의 의견은 크게 둘로 나뉘었었다

  ‘기본법 제정은 빠를수록 좋다는 쪽과 시기상조라는 쪽이었다. 전자는 법의 좋은 취지를 강조하며, 반대세력이 될 수도 있는 여당이 찬성할 때 빨리 만드는 게 상책이라고 주장했다.

후자는 사회적경제로 분류되는 다양한 조직과 기관들의 자발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범주화하는 것은 자율성을 저해할 뿐이라고 맞섰다. 또 전자는 힘 있는 기획재정부의 통합 관리가 효율적이며 당사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했고, 후자는 사회적경제 부문이 관치화될 것을 우려했다.

  돌이켜보면, 이처럼 상반된 견해의 이면에는 사회적경제의 발전을 어떻게 보는가에 관해 인식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후자는 사회적경제를 일종의 시민사회운동으로 보고 당사자들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자발성을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여긴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우호적인 환경 조성에 치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반면, 전자는 사회적경제를, 정부 주도 하에 확산시켜 나갈 수 있는 정책 프로그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당사자들의 인식과 역량은 정부가 투입하는 자원의 양과 지원책에 비례에서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깔려 있다.

따라서 정부 측의 사회적경제 활성화 의지를 명시한 법이라면, 구체적 내용이 어떠하든 간에 당사자 조직의 확산과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입장이다

여기서 새삼 누가 전적으로 옳고 틀렸다고 명토 박을 생각은 없다. 단지, 우리가 어떤 정책에 관해서 결정할 때 지켜야 할 원칙 같은 것을 생각해 봤으면 싶다.

  무엇보다 우리 한국사회의 고질병인 졸속주의를 떨쳐내야 한다.

당사자 조직들의 상이한 이해관계, 정부부처들 간의 이견, 개념의 혼란과 모순 등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무조건 법을 만들고 보자는 식은 정말 곤란하다.

사회적경제라는 큰 범주로의 통합이 정녕 협동과 연대의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는 길이라면, 각 구성원들이 이견을 극복하고 공동의 주체의식을 굳건히 하는 과정은 결코 생략될 수 없는, 법제화의 전제조건이다

 

  또한 사회적경제가 시장자본주의의 적이라고 떠드는 극우 홍위병들의 존재도 졸속한 법제화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자유경제원과 어버이연합 등의 반대 캠페인은 그들이 무지와 몰이해를 스스로 드러내는 해프닝에 불과하다.

그들을 의식해 어떻게든 법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보자는 발상도 현명한 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

  앞으로 사회적경제법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또 다시 많은 논란과 의견의 충돌이 재연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물 들어올 때 배 띄우자거나 시간 끌어도 달라질 건 없다는 식의 주장만큼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면 싶다.

그것은 저잣거리의 장사꾼이라면 몰라도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정책을 논하는 사람이 입에 담을 소리는 아니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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