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들로 보고서는 1980년에 서기 2000년을 바라보며 협동조합이 맞닥뜨릴 현실과 협동조합운동의 과제를 정했다. 레이들로 박사는 경제, 사회, 정치, 에너지와 자원, 인구와 식량, 고용, 환경, 과학과 기술, 기업의 힘, 도시화라는 범주에 따라 현실을 여러 각도로 분석했고, 이 분석에 기초해서 협동조합의 약점과 강점을 꼽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협동조합운동에서 레이들로 보고서가 여전히 중요한 문헌으로 인정되는 것은 현실을 진단하고 그것에 기초해서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협동조합운동도 이렇게 현실을 진단하며 자기 길을 걷고 있을까? 아직도 주된 논의는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거나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거나 협동조합7원칙에 따라 조합 활동을 해석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중앙/지방정부의 정책도 현실에서 구성되는 게 아니라 뭘 만들어 몇 개까지 수를 늘린다는 다분히 주관적인 의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공통의 필요와 열망을 조직하는 결사체라면 시민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출간한 『분노의 숫자들』(동녘, 2014년)을 보자. 1997년 IMF 이전(1985년~1997년)에는 실질임금 증가율(10.4%)이 생산성 증가율(9.7%)보다 0.7% 높았는데, IMF 이후 2011년까지 실질임금 증가율은 3.5%로 생산성 증가율 7.6%보다 무려 4.1%나 낮았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만큼 제 몫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돈은 어디로 갔을까? 2012년 10대 대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123조 7천억원으로 2006년보다 무려 3.5배나 늘었다. 사회양극화라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고, 그러다보니 부지런히 일하는 게 한심하거나 멍청한 짓이 되어버린 사회, 건강한 노동이 불가능한 사회가 바로 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소득층의 가계부채는 계속 증가해서 한국의 가계부채부담은 OECD국가 평균의 2배이다. 2011년에는 소득 하위 20%의 부채가 연소득의 2배를 넘었고, 2013년에는 제2금융권 가계대출 비율이 50%를 넘어섰다. 가계의 재정상황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서민을 상대로 돈 장사를 하는 대부업체는 2012년 하반기 조사 결과 이자만 2조 8천억원을 걷어들인다.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의 초침은 이제 거의 끝에 이르렀다. 터지면 누가 살아남을까?
사회안전망도 형편없어서 아동가족복지는 OECD 최하위이고 청소년 사망자 중 3명은 자살, 노인 자살률도 세계 1위이다. 4, 50대의 암발생율 역시 세계 최고이니 연령대와 상관없이 살아남는 게 용한 사회이다. 이 와중에 아파트 전세 가격 상승률은 소득 증가율의 2.5배이고,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은 고소득층의 10배 이상이라고 한다.
미래가 불투명하니 청(소)년들은 사회나 기존 제도를 믿지 않는 것을 넘어서 사회나 제도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사회적인 신뢰도는 말을 꺼내기조차 어렵다. 학력이나 학벌은 높지만 능력을 살릴 일자리는 적고 배움을 통한 성장가능성도 낮다.
한국의 도시화율은 2013년 91.58%로,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공공서비스나 도심관리의 문제들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경제, 사회적인 문제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인구나 에너지 문제도 심각하다.
2014년 한국의 인구증가율은 0.41%로 낮은 수준인데,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중은 12.6%이고 농촌의 고령화율은 40%를 넘어섰다. 그리고 인구증가율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이주민의 수는 계속 늘어나 2020년에는 3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고령화나 다문화에 대한 사회의 준비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한국의 에너지 자급율은 3% 대이고, 주에너지원인 석유는 생산되지 않는다.
식량 자급율도 약 22% 정도이나 쌀을 제외하면 5%대로 떨어진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생태계 파괴의 후유증도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고 기후변화도 이제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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