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망이야기

서기 2020년의 협동조합은? (하승우 사회투자지원재단 연구위원)

사회투자지원재단 2015. 7. 7. 15:38

 

 

 

 

이들로 보고서는 1980년에 서기 2000년을 바라보며 협동조합이 맞닥뜨릴 현실과 협동조합운동의 과제를 정했다. 레이들로 박사는 경제, 사회, 정치, 에너지와 자원, 인구와 식량, 고용, 환경, 과학과 기술, 기업의 힘, 도시화라는 범주에 따라 현실을 여러 각도로 분석했고, 이 분석에 기초해서 협동조합의 약점과 강점을 꼽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협동조합운동에서 레이들로 보고서가 여전히 중요한 문헌으로 인정되는 것은 현실을 진단하고 그것에 기초해서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협동조합운동도 이렇게 현실을 진단하며 자기 길을 걷고 있을까? 아직도 주된 논의는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거나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거나 협동조합7원칙에 따라 조합 활동을 해석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중앙/지방정부의 정책도 현실에서 구성되는 게 아니라 뭘 만들어 몇 개까지 수를 늘린다는 다분히 주관적인 의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공통의 필요와 열망을 조직하는 결사체라면 시민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출간한 분노의 숫자들(동녘, 2014)을 보자. 1997IMF 이전(1985~1997)에는 실질임금 증가율(10.4%)이 생산성 증가율(9.7%)보다 0.7% 높았는데, IMF 이후 2011년까지 실질임금 증가율은 3.5%로 생산성 증가율 7.6%보다 무려 4.1%나 낮았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만큼 제 몫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돈은 어디로 갔을까? 201210대 대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1237천억원으로 2006년보다 무려 3.5배나 늘었다. 사회양극화라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고, 그러다보니 부지런히 일하는 게 한심하거나 멍청한 짓이 되어버린 사회, 건강한 노동이 불가능한 사회가 바로 한국이다.

  런 상황에서 저소득층의 가계부채는 계속 증가해서 한국의 가계부채부담은 OECD국가 평균의 2배이다. 2011년에는 소득 하위 20%의 부채가 연소득의 2배를 넘었고, 2013년에는 제2금융권 가계대출 비율이 50%를 넘어섰다. 가계의 재정상황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서민을 상대로 돈 장사를 하는 대부업체는 2012년 하반기 조사 결과 이자만 28천억원을 걷어들인다.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의 초침은 이제 거의 끝에 이르렀다. 터지면 누가 살아남을까?

  사회안전망도 형편없어서 아동가족복지는 OECD 최하위이고 청소년 사망자 중 3명은 자살, 노인 자살률도 세계 1위이다. 4, 50대의 암발생율 역시 세계 최고이니 연령대와 상관없이 살아남는 게 용한 사회이다. 이 와중에 아파트 전세 가격 상승률은 소득 증가율의 2.5배이고,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은 고소득층의 10배 이상이라고 한다.

  미래가 불투명하니 청()년들은 사회나 기존 제도를 믿지 않는 것을 넘어서 사회나 제도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사회적인 신뢰도는 말을 꺼내기조차 어렵다. 학력이나 학벌은 높지만 능력을 살릴 일자리는 적고 배움을 통한 성장가능성도 낮다.

  한국의 도시화율은 201391.58%,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공공서비스나 도심관리의 문제들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경제, 사회적인 문제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인구나 에너지 문제도 심각하다.

2014년 한국의 인구증가율은 0.41%로 낮은 수준인데,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중은 12.6%이고 농촌의 고령화율은 40%를 넘어섰다. 그리고 인구증가율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이주민의 수는 계속 늘어나 2020년에는 3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고령화나 다문화에 대한 사회의 준비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한국의 에너지 자급율은 3% 대이고, 주에너지원인 석유는 생산되지 않는다.

  식량 자급율도 약 22% 정도이나 쌀을 제외하면 5%대로 떨어진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생태계 파괴의 후유증도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고 기후변화도 이제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이런 다양한 문제들을 바로잡고 시민의 삶을 지지해야 할 정치의 상황은 더욱더 심각하다. 정치인들의 부패는 묵인되고 공공서비스는 축소되는 추세이다. 지방자치제도도 역행하고 있고,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시민의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의 확산에서 보이듯 한국정부는 질병이나 재해, 재난을 관리할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위에서 살펴본 이런 요인들은 협동조합운동의 위협요인이자 기회요인이다.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각자 살아남기에 바쁜 사람들은 협동과 연대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도 있고 반대로 협동조합을 통해 살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레이들로보고서도 비관적인 현실진단을 통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대에 어떤 대안을 찾아 나설 것이고 그들 중 다수는 1930년대의 대공황 때처럼 협동조합적 방법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예상을 하기도 했다. 레이들로 박사는 한편으로는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협동조합이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협동조합이 장기적인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일반의 인식이 넓혀지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보다 잘 기능하게 하는데 요구되는 보다 공정한 체제가 이루어질 때 그 속에서 협동조합도 발전할 수 있다.”며 협동조합이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전망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물론 만들어진지 1, 2년도 안되어 자기 앞가림에 급급한 협동조합들이 이런 전망을 세우고 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전망을 세우지 않는다고 현실을 피할 수도 없다. 그리고 소비자생협이나 의료생협처럼 먼저 시작한 협동조합들은 이런 현실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5년 뒤의 한국사회는 어떻게 바뀌고 협동조합운동은 그 속에서 얼마나 쇠퇴하거나 성장할까?

  일반 영리기업들은 이런 질문을 더 적극적으로 던지며 전망을 세운다. 예를 들어, 20141215일에 나온 <현대경제연구원>‘2020년 인구 효과에 따른 소비구조 전망리포트는 인구 고령화는 향후 소비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면서 인구구조 변화를 중심으로 향후 가계의 소비구조 변화를 추정하고 시사점을 도출해야 한다고 본다.

  세부적으로 보면, 인구 고령화에 따라 주거·수도·광열쪽 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지출이 늘어난다. 반대로 고령화에 따라 교육지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식료품·비주류음료, 주류·담배 지출이 줄어들며, 오락·문화, 음식·숙박 등의 지출 비중도 감소하리라 예상된다고 리포트는 전망했다. 이런 소비구조의 변화는 협동조합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여기에 노동빈곤과 가계부채, 복지후퇴와 같은 요인들을 더하면 협동조합은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까? 아주 먼 미래가 아니라 불과 5년 뒤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이 리포트에서 지적되지 않았지만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의 비중은 201426.5%에서 202029.6%, 203032.7%로 늘어날 것이라 예상된다.

이런 가구구성의 변화는 협동조합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현재의 3, 4인 가구 중심의 협동조합 체계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까?

기업은 빠르고 협동조합은 느리다. 더구나 한국의 대기업은 영악하고 탐욕스럽다. 협동조합운동은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