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망이야기

협동조합운동의 흐름과 비판적 점검

사회투자지원재단 2013. 4. 15. 15:14

 

  
한국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 수가 이미 60만을 넘어섰지만 협동조합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아는 사람들의 인식도 농업협동조합이나 생협 매장 정도이다. 하지만 농협이나 수협이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생협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유기농이나 친환경 먹거리를 구입하는 매장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협동조합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도는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엔이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정하고 전세계적인 경제위기 이후 협동조합이 일자리 창출과 지속가능한 성장의 대안으로 떠오르자 한국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고 서울시가 협동조합도시를 선언하는 등 사회적인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그런 관심 이면에는 한국의 경제가 재벌들의 손아귀에 포획되어 있고 수출 의존도가 높아 외부환경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성장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말이다.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사람으로서 사회적인 관심이 반갑지 않을 수 없지만 이런 관심이 협동조합‘운동’의 확대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분명 경제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의 존재는 독점재벌이나 일반 기업보다 노동자에게 훨씬 나은 노동조건을 제공한다. 허나 협동조합이 있다고 해서 그 사회가 시민의 좋은 삶을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농협이 있다고 해서 농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나고 매출규모가 증가한다고 해서 승자독식의 자본주의와 정치와 경제가 유착되고 중앙집권화된 국가구조가 자동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협동조합‘운동’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이 글은 협동조합운동의 관점에서 협동조합들의 상황을 점검하고 협동조합기본법 이후 협동조합운동의 과제를 찾아보려 한다.
 

협동조합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과 달리 협동조합에 소속된 조합원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농협의 조합원수가 2백 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수협도 16만 명, 신용협동조합도 5백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이런 수를 바탕으로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 농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수협, 신협, 아이쿱생협 등이 가입되어 있다). 현재 연합회가 구성된 국내 소비자생협의 조합원 수와 공급액은 아래 표와 같이 추정된다.[각주:1]
 
 
이 자료를 보면 소비자생협연합회에 소속된 조합원 수는 2011년을 기준으로 약 58만명이고, 조합원이 이용하는 물품거래비용도 6,000억원을 넘는다. 더 놀라운 건 불황과 경기침체 속에서도 조합원 수의 평균증가율이 22.3%이고, 공급액 증가율도 23.4%에 달한다는 점이다. 증가율을 고려하면 이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그리고 소비자생협 외에 2009년을 기준으로 한국의료생협연대에 소속된 의료생협의 조합원 세대 수를 합치면 15,280세대나 된다.[각주:2] 
 
 
둘을 합하면 조합원 세대가 약 73만 세대나 되고, 소비자생협과 의료생협 모두 조합원의 구성이 세대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숫자로 그 가능성을 점칠 수는 없지만 조합원의 수로 판단한다면,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낡은 브랜드가 아니라 외려 뜨는 브랜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소비자생협의 조합원수와 공급액 증가속도는 다른 산업보다 월등하게 빠르고, 먹거리와 건강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생협의 성장가능성은 무시될 수 없다(그래서인지 ‘유사소비자생협’과 ‘유사의료생협’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소비자생협의 활동은 단순히 농산물의 직거래와 안전한 먹거리로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생협은 조합원과 조합원 가족,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활성화시키는 다양한 활동들, 먹거리 교육이나 학교급식조례운동, 농업살림운동, 협동하는 생활문화정착, 지역살림운동, 지역사회 식품안전생활시스템 구축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료생협 또한 질병의 치료보다 건강한 삶을, 그리고 주민참여와 협동으로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협동조합운동은 지역운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조합원들이 사회적 주체로 등장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원한다. 협동조합은 사업체이자 결사체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협동조합의 수는 2012년 12월에 발효된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법이 발효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전국에서 일반협동조합이 119건, 사회적협동조합이 17건 신청되었다.[각주:3] 과거 소비자생협의 설립기준이 조합원 300명 이상, 출자금 3,000만원 이상이었다면, 협동조합기본법은 출자금 규모에 상관없이 5인 이상이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그런 점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은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사업 대상도 먹거리나 의료에서 대리운전, 도시농업, 재생에너지사업 등으로 늘어날 것이다. 심지어 주식회사 <해피브릿지>는 2012년 연말에 주식회사 해산총회를 열고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을 결의하기도 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협동조합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만 따지면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은 분명히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어떤 제도가 사회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똑같은 효과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귤이 황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사회조건은 제도에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경향이 한번 만들어지면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것을 제도의 ‘경로의존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협동조합기본법에 앞서 2007년 1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었다. 당시 노동부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고 재화?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면서 그 수익을 사회적 목적을 위해 재투자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갖춘 기업을 사회적 기업이라 정의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사회적 경제’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쨌거나 이런 지원정책에 따라 사회적 기업의 수는 2007년 446개에서 2012년 2,221개로 5년간 498% 증가했고, 2012년 9월 기준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도 17,410명이고 이 중 취약계층이 10,640명이다. 그리고 노동자의 평균 급여는 월 107.6만원이고, 비정규직 비율이 52.7%이다.[각주:4]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이런 수치로만 보면 사회적 기업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사회적 기업보다 사회적 일자리가 부각된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제도를 시작할 당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제도라는 것을 도입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노동부 장관의 인증을 받아야 하고, 인증을 받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도록 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인증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었다. 그리고 정부의 인증이 신규사업보다 기존에 이미 진행되어오던 사업들, 즉 이미 인력과 자원을 가진 곳으로 집중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또한 사회적 기업이 사회성보다 일자리를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비판, 정부가 최저임금만을 보조하고 나머지 부족분을 사업을 통해 보충하도록 해서 저임금 일자리가 확산된다는 비판, 정부가 노동복지(workfare)를 강조하면서 기본적인 복지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비판 등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도 이런 경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기본법에서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구분된다. (일반)협동조합은 5인 이상의 결의로 설립되고 신고만 하면 등록절차를 거쳐 활동할 수 있다. 반면에 지역사회에 공헌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월평균 소득의 60% 이하, 고령자, 장애인, 결혼이민자, 경력단절여성, 갱생보호 대상자 등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이들을 고용하는 비중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5인 이상의 결의로 가능한데, 기획재정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설립될 수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달리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과 비슷하게 ‘인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어떤 제도가 사회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똑같은 효과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귤이 황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사회조건은 제도에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경향이 한번 만들어지면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것을 제도의 ‘경로의존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협동조합기본법에 앞서 2007년 1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었다. 당시 노동부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고 재화?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면서 그 수익을 사회적 목적을 위해 재투자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갖춘 기업을 사회적 기업이라 정의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사회적 경제’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쨌거나 이런 지원정책에 따라 사회적 기업의 수는 2007년 446개에서 2012년 2,221개로 5년간 498% 증가했고, 2012년 9월 기준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도 17,410명이고 이 중 취약계층이 10,640명이다. 그리고 노동자의 평균 급여는 월 107.6만원이고, 비정규직 비율이 52.7%이다.[각주:4]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이런 수치로만 보면 사회적 기업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사회적 기업보다 사회적 일자리가 부각된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제도를 시작할 당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제도라는 것을 도입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노동부 장관의 인증을 받아야 하고, 인증을 받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도록 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인증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었다. 그리고 정부의 인증이 신규사업보다 기존에 이미 진행되어오던 사업들, 즉 이미 인력과 자원을 가진 곳으로 집중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또한 사회적 기업이 사회성보다 일자리를 만드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비판, 정부가 최저임금만을 보조하고 나머지 부족분을 사업을 통해 보충하도록 해서 저임금 일자리가 확산된다는 비판, 정부가 노동복지(workfare)를 강조하면서 기본적인 복지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비판 등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도 이런 경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기본법에서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구분된다. (일반)협동조합은 5인 이상의 결의로 설립되고 신고만 하면 등록절차를 거쳐 활동할 수 있다. 반면에 지역사회에 공헌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월평균 소득의 60% 이하, 고령자, 장애인, 결혼이민자, 경력단절여성, 갱생보호 대상자 등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이들을 고용하는 비중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은 5인 이상의 결의로 가능한데, 기획재정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설립될 수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달리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과 비슷하게 ‘인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협동조합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지역이 스페인의 몬드라곤이다. 협동조합의 규모가 작을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과 달리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연합조직)의 자산은 약 53조에 달한다.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을 포괄하는 몬드라곤의 자산규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인 현대중공업(2011년 기준 약 54조)보다 조금 적은 수준이다. 그리고 몬드라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수도 무려 8만 4천명에 달한다. 고용인원으로만 따지면, 몬드라곤은 SK나 롯데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의 협동조합들은 생산과 소비, 신용, 문화 등의 영역에 폭넓게 퍼져 있다. 유럽의 조합원 수나 매출고는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수준이다. 전 국민의 60%가 조합원인 스위스에서는 협동조합이 카르푸의 매장을 인수했고, 이탈리아의 볼로냐시는 한국 협동조합 관계자들의 순례코스가 되었다. 유럽만이 아니다. 캐나다의 협동조합은행 데자르댕(Desjardins)은 조합원이 580만명으로 자산이 216조, 노동자가 4만 7천명에 이른다.
 
이런 규모를 보면 협동조합은 결코 미미한 흐름이 아니며, 전 세계 경제규모에서 적지 않은 부문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년과 올해 계속 소개되는 해외의 협동조합 사례들은 이런 성공사례들이고, 실제로 한국의 많은 소비자생협들이 스위스의 미그로(Migros)와 같은 유럽생협의 대형매장을 부러워하니 한국의 협동조합운동도 이런 해외사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외국의 협동조합들이 아무런 위기를 경험하지 않으며 성장만 해온 것은 아니다. 유럽의 협동조합들은 세계대전과 파시즘, 경제위기, 유럽통합이라는 실험을 통과해야 했고,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외국의 협동조합들이 큰 몸집을 가지게 된 것은 이런 위기와 무관하지 않고, 그런 과정에서
협동조합의 그늘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스페인의 몬드라곤은 더 이상 바스크 지방의 협동조합이 아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에 소속된 노동자 중에서 러시아와 멕시코, 중국, 브라질,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고용된 인원은 201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약 1만 6천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에 협동조합만 속해 있는 것도 아니다. 몬드라곤은 1990년대부터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들을 만들었다. “특히 유통 부문의 자회사들은 상당수가 비협동조합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결과 몬드라곤에 소속된 260여 개 회사 가운데 대략 절반만 협동조합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각주:8]
 
몬드라곤의 글로벌화와 조직형태의 변화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관한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전체 고용규모는 늘어났지만 이것은 해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고, 에로스키를 비롯한 유통부문이 인수?합병을 통해 공격적으로 사업체를 늘려온 분야에서는 조합원 노동자의 비중이 급격히 떨어졌다. 즉 규모는 커졌지만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들이 증가한 것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고, 협동조합의 자회사들이 협동조합이 아닌 주식회사로 세워지는 모순이 만들어졌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주식회사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노동자 조합원의 비중을 늘려나간다고 하지만, 현재의 경제위기를 고려할 때 제조업 조합원 중심의 몬드라곤이 그 구상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정체성 변화는 협동조합의 의사결정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규모가 커지는 만큼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상시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총이사회와 상임위원회, 사무국의 권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위기구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가 자신의 규정으로 개별 협동조합을 규제하려 들기도 한다. 또한 노동자 조합원들은 사업과 배당에 관심을 갖지 조합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이렇게 바뀐다면 이 조직을 협동조합이라 부를 이유가 없다.
 
갈러(Z. Galor)는 이런 경향을 탈협동화(demutualization)라 부른다.[각주:9] 갈러는 전 세계 다양한 협동조합들에서 탈협동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그런 경향이 소비자협동조합과 에너지협동조합에서 두드러직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탈협동화 경향이 나타나는 주된 원인은 조합원의 관심과 참여 부족이다. 즉 협동조합이 탈협동화되어도 조합원들은 관심이 없거나 외려 주식회사로의 전환을 지지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문제가 조합원들 탓은 아니다. 조합원의 삶을 지지하거나 조합원과 함께 성장하지 않는 협동조합의 구조도 문제이고, 세계화에 따른 경제구조 변화나 초국적기업들과의 경쟁, 협동조합이 낡은 것이라는 편견같은 외부요인들도 탈협동화를 부추긴다.
 
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따져 보자. 이스라엘의 트누바(Tnuva)는 연계형 협동조합(secondary cooperative)으로 농업공동체인 모샤브(Moshavim)와 키부츠(Kibbutzim)가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하는 곳이다. 지난 몇 십년 동안 트누바는 빠르게 성장했고, 그와 더불어 조합의 지분과 가치도 높아졌다. 그런데 조합원들이 아니라 두 조합의 위원회가 트누바를 운영했고, 조합원들은 트누바의 성장에서 자기 몫을 공유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이스라엘의 대기업이 트누바를 인수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에이팩스(APAX)사가 10억 달러(트누바의 실제 자산가치는 8억 달러 정도)를 제안하자 총회는 압도적인 비율로 지분의 매각을 결정했다(에이팩스사가 51%의 지분을 차지!).
 
갈러는 조합에 관심을 가진 조합원 그룹이 존재했다면 그들이 탈협동화에 맞섰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어쨌거나 이런 전환의 결과 2011년 7월에는 트누바의 비싼 치즈가격 때문에 이스라엘 시민들이 불매운동을 조직하는 일까지 생겼다. 시민들의 조직이어야 할 협동조합을 시민들이 불매운동하는 비극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일이 이스라엘의 협동조합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협동조합간의 연대도 좋지만 연계형 협동조합이 조합원들의 관심과 참여구조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런 변화가 온전히 협동조합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갈러가 탈협동화의 외부요인이라 얘기한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결정권의 집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와 시장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면서 엄청난 힘을 가진 괴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정치, 경제의 영역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단순히 초국적 자본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괴물들이다. 심지어 국가의 고유한 영역이라 불렸던 치안과 군대 영역도 점점 민간기업의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협동조합의 성공을 점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싸워야 할 상대의 힘이 집중된다고 해서 협동조합운동도 힘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논리 역시 괴물을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세계가 ‘1 대 99의 사회’로 전락한 것은 99%의 사람들에게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99%의 사람들이 다시 결정권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이지 1%를 위한 벤처사업이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해외의 이런 탈협동화 경향을 무시하고 한국의 협동조합들은 양적인 성장에 올인하고 있다. 최근 박승옥이 “성장은 결사체로서의 성장과 사업체로서의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지, 자본주의 성장신화에 갇힌 성장지상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때로 협동조합은 지나친 성장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를 뛰어넘는 사업의 성장은 그 자체로 결사체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 것은 이런 성장에의 열광을 비판한 것이다.[각주:10]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사회의 작은 섬에 불과하다며 부정적이었던 레닌(V. Lenin)조차 “협동조합을 신경제정책에 적응시킬 것이 아니라 신경제정책을 협동조합에 적응시켜야 한다”고 말할 만큼 다른 세상을 꿈꿨던 협동조합운동의 힘은 어디로 갔을까?


협동조합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지역이 스페인의 몬드라곤이다. 협동조합의 규모가 작을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과 달리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연합조직)의 자산은 약 53조에 달한다.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을 포괄하는 몬드라곤의 자산규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인 현대중공업(2011년 기준 약 54조)보다 조금 적은 수준이다. 그리고 몬드라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수도 무려 8만 4천명에 달한다. 고용인원으로만 따지면, 몬드라곤은 SK나 롯데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의 협동조합들은 생산과 소비, 신용, 문화 등의 영역에 폭넓게 퍼져 있다. 유럽의 조합원 수나 매출고는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수준이다. 전 국민의 60%가 조합원인 스위스에서는 협동조합이 카르푸의 매장을 인수했고, 이탈리아의 볼로냐시는 한국 협동조합 관계자들의 순례코스가 되었다. 유럽만이 아니다. 캐나다의 협동조합은행 데자르댕(Desjardins)은 조합원이 580만명으로 자산이 216조, 노동자가 4만 7천명에 이른다.
 
이런 규모를 보면 협동조합은 결코 미미한 흐름이 아니며, 전 세계 경제규모에서 적지 않은 부문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년과 올해 계속 소개되는 해외의 협동조합 사례들은 이런 성공사례들이고, 실제로 한국의 많은 소비자생협들이 스위스의 미그로(Migros)와 같은 유럽생협의 대형매장을 부러워하니 한국의 협동조합운동도 이런 해외사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외국의 협동조합들이 아무런 위기를 경험하지 않으며 성장만 해온 것은 아니다. 유럽의 협동조합들은 세계대전과 파시즘, 경제위기, 유럽통합이라는 실험을 통과해야 했고,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외국의 협동조합들이 큰 몸집을 가지게 된 것은 이런 위기와 무관하지 않고, 그런 과정에서
협동조합의 그늘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스페인의 몬드라곤은 더 이상 바스크 지방의 협동조합이 아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에 소속된 노동자 중에서 러시아와 멕시코, 중국, 브라질,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고용된 인원은 201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약 1만 6천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에 협동조합만 속해 있는 것도 아니다. 몬드라곤은 1990년대부터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들을 만들었다. “특히 유통 부문의 자회사들은 상당수가 비협동조합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결과 몬드라곤에 소속된 260여 개 회사 가운데 대략 절반만 협동조합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각주:8]
 
몬드라곤의 글로벌화와 조직형태의 변화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관한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전체 고용규모는 늘어났지만 이것은 해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고, 에로스키를 비롯한 유통부문이 인수?합병을 통해 공격적으로 사업체를 늘려온 분야에서는 조합원 노동자의 비중이 급격히 떨어졌다. 즉 규모는 커졌지만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들이 증가한 것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고, 협동조합의 자회사들이 협동조합이 아닌 주식회사로 세워지는 모순이 만들어졌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주식회사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노동자 조합원의 비중을 늘려나간다고 하지만, 현재의 경제위기를 고려할 때 제조업 조합원 중심의 몬드라곤이 그 구상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정체성 변화는 협동조합의 의사결정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규모가 커지는 만큼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상시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총이사회와 상임위원회, 사무국의 권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위기구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가 자신의 규정으로 개별 협동조합을 규제하려 들기도 한다. 또한 노동자 조합원들은 사업과 배당에 관심을 갖지 조합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이렇게 바뀐다면 이 조직을 협동조합이라 부를 이유가 없다.
 
갈러(Z. Galor)는 이런 경향을 탈협동화(demutualization)라 부른다.[각주:9] 갈러는 전 세계 다양한 협동조합들에서 탈협동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그런 경향이 소비자협동조합과 에너지협동조합에서 두드러직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탈협동화 경향이 나타나는 주된 원인은 조합원의 관심과 참여 부족이다. 즉 협동조합이 탈협동화되어도 조합원들은 관심이 없거나 외려 주식회사로의 전환을 지지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문제가 조합원들 탓은 아니다. 조합원의 삶을 지지하거나 조합원과 함께 성장하지 않는 협동조합의 구조도 문제이고, 세계화에 따른 경제구조 변화나 초국적기업들과의 경쟁, 협동조합이 낡은 것이라는 편견같은 외부요인들도 탈협동화를 부추긴다.
 
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따져 보자. 이스라엘의 트누바(Tnuva)는 연계형 협동조합(secondary cooperative)으로 농업공동체인 모샤브(Moshavim)와 키부츠(Kibbutzim)가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하는 곳이다. 지난 몇 십년 동안 트누바는 빠르게 성장했고, 그와 더불어 조합의 지분과 가치도 높아졌다. 그런데 조합원들이 아니라 두 조합의 위원회가 트누바를 운영했고, 조합원들은 트누바의 성장에서 자기 몫을 공유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이스라엘의 대기업이 트누바를 인수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에이팩스(APAX)사가 10억 달러(트누바의 실제 자산가치는 8억 달러 정도)를 제안하자 총회는 압도적인 비율로 지분의 매각을 결정했다(에이팩스사가 51%의 지분을 차지!).
 
갈러는 조합에 관심을 가진 조합원 그룹이 존재했다면 그들이 탈협동화에 맞섰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어쨌거나 이런 전환의 결과 2011년 7월에는 트누바의 비싼 치즈가격 때문에 이스라엘 시민들이 불매운동을 조직하는 일까지 생겼다. 시민들의 조직이어야 할 협동조합을 시민들이 불매운동하는 비극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일이 이스라엘의 협동조합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협동조합간의 연대도 좋지만 연계형 협동조합이 조합원들의 관심과 참여구조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런 변화가 온전히 협동조합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갈러가 탈협동화의 외부요인이라 얘기한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결정권의 집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와 시장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면서 엄청난 힘을 가진 괴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정치, 경제의 영역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단순히 초국적 자본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괴물들이다. 심지어 국가의 고유한 영역이라 불렸던 치안과 군대 영역도 점점 민간기업의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협동조합의 성공을 점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싸워야 할 상대의 힘이 집중된다고 해서 협동조합운동도 힘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논리 역시 괴물을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세계가 ‘1 대 99의 사회’로 전락한 것은 99%의 사람들에게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99%의 사람들이 다시 결정권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이지 1%를 위한 벤처사업이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해외의 이런 탈협동화 경향을 무시하고 한국의 협동조합들은 양적인 성장에 올인하고 있다. 최근 박승옥이 “성장은 결사체로서의 성장과 사업체로서의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지, 자본주의 성장신화에 갇힌 성장지상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때로 협동조합은 지나친 성장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를 뛰어넘는 사업의 성장은 그 자체로 결사체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 것은 이런 성장에의 열광을 비판한 것이다.[각주:10]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사회의 작은 섬에 불과하다며 부정적이었던 레닌(V. Lenin)조차 “협동조합을 신경제정책에 적응시킬 것이 아니라 신경제정책을 협동조합에 적응시켜야 한다”고 말할 만큼 다른 세상을 꿈꿨던 협동조합운동의 힘은 어디로 갔을까?


단순히 협동조합의 수가 늘어나고 그것이 차지하는 몫이 커진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협동의 그물망으로 엮이지는 않을 것 같다. 공산당이나 사회당, 녹색당이 대안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은 나라의 협동조합과 대안정치세력이 거의 없고 생협의 정치참여를 법으로 금지당한 한국의 협동조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분권화된 국가의 협동조합과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의 협동조합은 매우 다른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서 활동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넘어서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 그대로 ‘함께 살자’이다.
 
함께 살려면 일단 먼저 서로를 마주봐야 한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우리가 어떤 삶을 지금 살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상상해야 한다. 그렇게 마주보고 상상하다보면 먼 미래의 좋은 삶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협동조합운동은 그런 삶을 위한 틀이 될 때 온전히 제 몫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과학'에 기고한 글

  1. 신중일, “생협 필요성 커지는데 불교계는 제자리”, 《현대불교》2012년 9월 15일자. [본문으로]
  2. 박봉희. 2010. “한국의료생협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 광주지역사회 협동조합학교 [본문으로]
  3. 최영진, “협동조합 설립 붐, 자본주의 대안으로 뜬다”, 《주간경향》2013년 1월 15일자(제 1009호) [본문으로]
  4. 국회예산정책처,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평가』, 2012년 10월(통권 262호) [본문으로]
  5. 기획재정부, 『협동조합 설립운영 안내서: 아름다운 협동조합 만들기』2013년 1월 24일 발행. [본문으로]
  6. 알랭 까이에 외, 김신양 편역, 『다른 경제』, (재)실업극복국민재단, 2005), 24~30쪽. [본문으로]
  7. 이 부분은 하승우, “협동조합의 부흥기/혼란기?”, 《오늘의 교육》2012년 3?4월호; 하승우, “살리지 못하면 죽는다: 유럽 탈협동화 경향이 주는 교훈”, 《살림이야기》2012년 여름호를 재구성했다. [본문으로]
  8. 김성오, 『몬드라곤의 기적: 행복한 고용을 위한 성장』(역사비평사, 2012년), 30쪽. [본문으로]
  9. http://www.coopgalor,.com 참조. [본문으로]
  10. 박승옥, “한국 생협, 성장신화 버려라”, 《녹색평론》 2013년 1?2월호, 53쪽. [본문으로]
  11. 데이비드 맥낼리 지음, 강수돌?김낙중 옮김, 『글로벌 슬럼프』(그린비, 2011년)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