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망이야기

사회적 경제 활동가의 철학과 자세 (2) - 김홍일 (사회투자지원재단 이사장)

사회투자지원재단 2013. 5. 24. 16:42

 

 

  

  

  

 

 

 80년대 변혁적 사회운동의 시각에서 보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활동이란 개량적 운동으로 치부되거나, 부차적인 운동으로 사회운동의 주체들로부터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 꾸준하게 시민사회와 사회운동 진영은 물론이고 정부차원에서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어 오고 있다.

 

  정부는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하여 심화되고 있는 실업문제와 늘어나는 국민의 복지욕구를 동시에 해결하는데 사회적 경제가 고용창출 잠재력이 높은 사회서비스와 비영리분야의 성장을 촉진하고 새로운 형태의 복지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사회적 경제가 자본주의 경제운영에서 발생한 환경문제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적 경제양식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세계를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하여 사회적 경제가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물신주의에 대한 반성으로서 마음의 여유, 인간관계의 풍요로움, 여유시간에 대한 추구가 새로운 경제공동체로서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고 있다.

 

  급격한 사회변화를 목표로 하는 활동가들에게는 사회적 경제의 확대를 통한 사회변화가 회의적이겠지만 사회적 경제의 확대로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공동체와 유대가 형성되고 있고, 시민들의 참여와 민주주의가 촉진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민주주의의 과제들 앞에는 시민의식의 성숙과 시민사회의 성장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과제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경제운동이 한국사회에 발전에 기여하여 할 또 다른 과제는 사회적 경제를 이루고 있는 주체들을 위한 교육과 이를 통한 대안의식과 의지의 창출이다.

 

  사회적경제는 새로운 경제를 꿈꾼다. 인간을 ‘이기적 개인’이라고 전제하고 있는 고전경제학과 달리 새로운 경제는 인간이 이기적인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의 잠재성에 더 깊이 천착한다. 나아가 이같은 인간의 협동하고, 나누려는 마음을 키워갈 수 있는 경제공동체에 관심한다. 새로운 경제는 경제가 생활과 분리되어 자율적으로 운동하는 것을 자명한 이치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경제를 생활과 사회윤리, 생태적 가치 회복에 기여하여야 한다는 가치균형에 주목한다. 새로운 경제는 화폐경제 외에도 우리 삶의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비화폐적 경제영역에도 주목하며, 효용이 소비만이 아니라 폐기물로부터도, 환경서비스로 부터도, 그리고 생산을 실시하는 과정으로부터도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새로운 경제는 또한 성공을 부와 풍요로움의 획득이라고 생각하는 단선적 관점을 넘어서 인간의 필요와 욕구를 경제주의적 관점에서 만이 아니라 생존, 보호, 애정, 이해, 참가, 여유, 창조, 자기인식, 자유 등 다면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유럽사회경제연구센터(EMES)' 소장 쟈크 드프르니 교수는 사회적 경제의 성공요인을 세 가지로 규정하였다. 첫째는 강력한 공동체의 필요와 욕구, 둘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체의 집합적 동질성과 정체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체의 역량이다. 사회적 경제가 규모있게 성공한 사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얻은 통찰이며 결론으로 세 가지 요소들 가운데 둘째와 셋째 요소는 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적 경제의 가장 큰 영역인 동시에 모태가 되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은 ‘협동조합의 원칙’을 통하여 표현되고 이는 협동조합의 운영원리인 동시에 가치와 철학을 담고 있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역사적으로 시대와 환경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원칙을 추가하기도 하고, 지켜오던 원칙을 폐기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2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는 원칙 가운데 하나가 ‘교육의 원칙’이다. 이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경제적 가치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협동조합 고유의 운영원칙들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확인한 결과라고 하겠다.

 

“만약 모든 조합원들이 협동조합 경제학의 원칙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협동조합은 궁극적으로 붕괴되고 말 것이다....따라서 협동조합은 무엇보다 교육운동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 가가와 / 일본협동조합가 -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복합체를 시작하였던 돈 호세 마리아신부는 “사람들이 협동조합운동을 가르켜 ‘교육을 매개로 하는 경제운동’이라고 하는데 나는 협동조합운동은 ‘경제를 매개로 하는 교육운동’이라고” 하였다. 그는 협동조합이 교육의 기초 위에 세워지며, 또 그것이 새로운 사회질서를 지향하는 경제적 진보를 위한 교육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협동조합은 새질서를 요구하는 많은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성숙시키는 학교이며 시설이다.” - 돈 호세 마리아 -

 

 

 

 

  "녹은 쇠에서 나온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어버린다."는 법구경의 구절은 첫 마음의 오롯함은 지키며 성숙한 사람이 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생각하게 한다. 첫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일은 그것이 어떤 관계이든, 활동이든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첫 마음의 순수함을 유지하고, 그 마음이 더욱 깊어질 수 있도록 스스로 자신과 활동을 성찰하고, 서로를 바르게 비추어주고, 지지해주는 동료들과의 관계를 필요로 한다.

 

 

  지도력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을 향하기 전에 스스로를 지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이 아니라 삶과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따른다. 그런 점에서 참다운 지도력이란 외적 지위나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지도자의 자기수련은 지도력의 핵심요소이다. 활동가는 활동을 통하여 자기를 드러내고, 실현하는 일보다 보다 공동체의 목표와 성장을 위한 촉진자이며, 매개자 그리고 활성가가 되어야 한다.

 

  참 삶은 이기적인 작은 자아를 넘어서 우리의 참된 정체성으로서의 보다 큰 자아, 그 생명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 김홍일 (성공회 사제, 사회투자지원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