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망이야기

사회적 경제 활동가의 철학과 자세<1> 김홍일(성공회 사제. 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투자지원재단 2013. 5. 2. 13:46

 

 

 

 

 

한 10년 전 쯤으로 기억한다. 일본 사회적경제의 원로 마루야마선생을 모시고 일본사회적경제 현황에 대한 강의를 듣고, 함께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물었다. ‘여러 사회적 경제 사례를 볼 때 사회적경제의 성공요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그때 너무나 쉽게 마루야마선생이 한 대답은 ‘Key Person' 이라는 단어였다.

 

 영국의 사회적기업 사례를 조사하던 중 스코트랜드에서 만났던 폴 즐리라는 사회적기업 컨설턴트에게도 물었었다. ‘많은 사례들을 컨설팅하면서 발견한 사회적기업의 성공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그때 들은 대답 역시 첫째가 ‘사람’이었다. 누가하느냐 그리고, 그 다음은 사업능력과 공공부문과의 협력능력이라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열 명 좀 넘는 ‘사회적경제 탐방팀’을 조직하여 한국사회에서 비교적 모범적인 사회적경제의 지역사례들을 며칠간 돌면서 방문하였던 적이 있다. 돌면서 받았던 가장 깊은 인상은 역시 사람이라는 화두였다. 모범적인 지역사례 뒤에는 늘 그것을 가능케 한 소수의 사람, 때로는 한 사람이 있었다.

 

 사회적 기업가 정신과 관련하여 연구를 하여 온 David Bornstein은 성공한 기업가는 그렇지 못한 사업가들에 비하여 자신감 넘치고 인내심이 많으리라 가정을 가지고 여러 사례들을 비교 연구하였으나, 연구결과가 그렇지 않다는 것에 적지 않게 놀랐다고 고백하였다. 그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성공한 기업가들과 그렇지 못한 기업가들의 결정적 차이는 동기의 질에 있다는 것이다.

성공한 기업가들이 지닌 공통된 특징은 강력한 동기 때문에 스스로를 개선해 나간다는 것이다. 명석함과 겸손 그리고 용기 있게 그들은 실수로부터 배우면서 스스로를 개선하여 나가는 일에 열심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활동의 결과와 업적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노력에 많은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셋째는 기존 제도와 관행을 넘어서려는 의지와 새로운 협력관계를 창조하는 일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과 함께 전국 시군구로 지역자활센터를 확대 지정하고 난 후 감사원은 물론이고 총리실, 복지부, 노동부 등에서 현장실사를 다녀와서 평가하는 자리에 참여하였던 적이 있다. 한결같은 평가는 현장에 대한 불신과 현장의 실무역량에 대한 우려들이었다. 거의 비슷한 상황이 사회적 기업을 제도화하고 지원하는 과정에서도 발생하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자활,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사회적 경제 이 모든 개념들과 관련하여 논의와 담론, 제도와 재원, 지원조직들은 넘실대는데 현장에서 그것을 수행할 사람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일에는 관심이 부족하다. 이같은 문제의식 때문에 정부는 물론이고 다양한 단체에서 교육예산을 마련하고,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살아있는 교육을 할 만한 경험과 지혜의 축척이 부족하고, 교육주체들 역시 이에 기반하여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지 냉정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넘어 사회적 경제활동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보다 진지한 성찰과 연구가 필요한 것이 아직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경제란 기존의 복지서비스 전달과도 다르고, 그 동안 진행되던 소상공인 창업지원과도 다르며, 시민사회가 해왔던 인권운동과도 다르며, 노동조합 운동과도 다른 활동영역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아직 다양한 모범적 사례가 부족한 것은 제도나 지원체계의 문제도 있겠지만, 주체의 미성숙이 보다 큰 원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의 일천한 경험과 옅은 지식으로 사회적 경제 활동가에게 필요한 태도와 자세를 정리하는 작업 역시 미리부터 그 한계를 고백할 수 밖에 없으며, 한 사람의 경험적 생각이라는 점을 밝히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 사회적 경제 활동가란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역사회와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 그리고 고통을 나누려는 사람들이다. 국가가 문제와 과제를 권력과 제도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활동가는 그 문제와 과제를 사랑과 우애라는 가치에 기초하여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제도와 정책 그리고 사랑과 우애라는 기초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그 활동의 기초가 어디에 기반하느냐에 따라 다른 처방과 방법이 나온다. 장애아를 둔 부모나 암 환자를 둔 가족들은 사랑으로 의사가 되고, 간호사가 되고, 상담가가 되고, 활동가가 되고, 교육자가 된다. 그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전문가를 넘어선다. 사회적 경제는 어느 제도와 예산을 보고 시작되거나, 기존의 자기활동을 확장하거나, 유지하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 시작하는 운동이 아니라 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우애 때문에 시작되는 운동이다.

 

둘째, 사회적 경제 활동가는 ‘보는 사람’이다. 자신이 성취하고 싶은 과제나 목표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몰두 때문에 활동가들은 종종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갈망하는지에 눈먼 상태로 활동을 하기 쉽다. ‘나눔의 집’ 시절, 마을신문을 만들면서 나는 문득 ‘나눔의 집’이 지역에서 ‘섬’처럼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지역사회 주민들의 삶과 관심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 ‘나눔의 집’활동을 통해 이루고자하는 자기 목표에 빠져 주민들과 괴리된 ‘섬’처럼 존재하는 ‘나눔의 집’을 볼 수 있었다. 사회적 경제는 어딘가에 모여 있는 재원을 보고 시작되는 운동이 아니라, 사람들의 집단적인 고통과 필요를 보는 곳에서 시작되는 운동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무료간병은 제가사업을 하던 한 실무자가 가난한 한 노부부의 의료적인 고통과 이를 방치하는 의료보험 체계를 직면하면서 시작된 사업이었다.

 

셋째, 사회적 경제 활동가들은 ‘놀라는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다. 요사이 긴장되고 있는 한반도의 위기상황이 이상적인 평화정착 방안과 통일방안이 없기 때문일까? 얼마나 많은 방안들이 발표되고 논의되었는가? 진짜 문제는 그 방안을 실천할 주체의 의지가 약하거나, 너무 소수이기 때문이 아닐까? 더 근원적으로는 ‘놀라는 능력과 가슴’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문제가 되는 상황과 사건을 보고 놀랄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런 대안적 상상도, 행동계획도 세울 수 없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란 문제를 보고 놀라고, 무언가 대안적 행동을 시작하는 곳에서 시작되는 운동이다. 색깔 명칭에서 ‘살색’이 ‘연주황’으로 바뀐 것은 다문화 활동을 하는 아버지를 둔 한 초등학생 ‘봄’과 ‘놀람’에서 시작되었다.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살색’이라는 명칭에 놀라지 않았지만 그 어린 여학생은 ‘놀라는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넷째, 사회적 경제 활동가들은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운전할 수 있는 승용차가 개발되기 전에 한 과학자가 교실에 휠체어는 타고 있는 장애우 사진을 가지고 수업을 시작하였다. 처음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이 장애우가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거의 모든 학생들의 대답이 부정적이었다. 같은 사진을 가지고 다른 교실에 들어가 이번에는 이렇게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이 장애우가 어떻게 운전을 할 수 있을까?” 많은 학생들이 대안적인 대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사회적 경제 활동가는 자신이 발견한 지역사회의 문제와 주민들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이 ‘될까 안 될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가능한가를 고민하며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회적 경제 활동가는 ‘자조와 상조의 철학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사회적 경제 활동가들은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있는 잠재적 능력과 역량에 주목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목적과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하여 노력하며, 그들과 함께 협동하는 일에 능숙한 사람들이다. 그 협동을 위하여 자신의 주장과 생각에 갇히지 않고 사람들을 경청하며, 그 경청을 통하여 시작 가능한 협동의 지점들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