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소식들

자유 그리고 붓을 들다.

사회투자지원재단 2008. 9. 2. 16:38

자유 그리고 붓을 들다.

 

                 [이탈리아어로 자원봉사를 하게 된 Global Communicator 박영희 씨]

 [Global Communicator는 세계 곳곳에서 현대사회에 대한 대안적인 움직임으로 전개 되고 있는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기업’ 활동에 관한 각국의 정보를 수집ㆍ번역하여 소통시키는 일을 합니다.]

 

이탈리아어로 자원봉사를 하게 된 Global Communicator 박영희씨는 자유에 대해 그녀의 삶의 의미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했다.

 

“기본 생계비와 그림 그릴 시간이 있다는 것이 내겐 자유죠.”

 

박영희씨는 10년 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에 잘 다니던 증권회사를 때려 치웠다.

퇴직 후 박영희씨는 22살부터 미술 학원을 다녀 불과 1년 여만에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그녀에게 자유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것인 듯 했다.

 

“여상을 나와서 처음 취업한 증권사에서 99년도 퇴직했죠. 회사 그만두고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1년 반 정도 그림에 매달렸죠.”

 

박영희 씨는 학원 선생으로부터 “미대에 진학해도 되겠다”는 소리를 듣고 시험을 봤다고 했다. 자유를 향한 그녀의 선택엔 주저함이 없어 보였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그림을 선택할 수 있었던 그 자신감이 궁금했다. 자신감의 배경은 의외로 간단했다.

 

"난 태생적으로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다니면서 자격증을 많이 따야 하는데 자격증은 교내자격증 밖에 못 땄죠. 공부보다 문학반, 연극반 기웃거리는 것을 더 좋아 했는데 미술반을 제외하곤 다 떨어졌죠.“

 

내세울 만한 자격증이 없다고 말하는 박영희씨. 자신이 증권사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고 했다.

 

필자는 박영희가 여상을 나와 증권사에서 미술학원으로 미술학원에서 홍익대 회화과를 들어간 것이 더 기적 같았다.(미술 천재인가?사회투자지원재단에서 자원봉사하는 Global Communicator들은 다채로운 인생경력을 가지고 있다)

 

회사 나와서 미래가 불안하지는 않았는지, 나이 먹고 미대가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림에 자신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림의 핵심을 보는 눈, 이런 게 있다고 생각했죠. 남들이 뭐 라든 나는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필자이지만 미대에 가려고 하면 뎃생을 잘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어 박영희 씨에게 물었다.

 

질문: “미대 갈려면 뎃생을 잘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불과 1년 만에 되던가요?”

 

박영희 : 나는 남들보다 나이가 먹어선지 석고상을 보면 뭐가 핵심인지 머리에 떠올라요. 그걸 믿고 그린 거죠. 그리고 자신감도 있었구요.”

 

나는 자신의 열정으로 향한 그녀의 과감한 자신감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이탈리아, 필이 꽂히다.

 

박씨가 이탈리아어와 관련을 맺은 계기는 대학 졸업 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떠난 이탈리아 여행 때문이다.

 

“대학을 나와 00신문(경제신문) 디자인팀장으로 근무했는데 그림 그릴 시간이 없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이탈리아로 1주 동안 여행을 갔다 왔죠. 기본적인 생활비를 벌려고 다시 웹디자인 일을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는데 자꾸만 이탈리아의 풍경이 눈에 꽂히는 거예요. 그래서 2002년도에 다시 회사 그만두고 1년 반가량 이탈리아로 어학연수를 떠났죠.”

 

박영희 씨는 시에나 국립대학에서 1년 6개월가량 어학연수를 했다. 한국으로 귀국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틈이 나면, 월드 빌리지란 비영리단체에서 외국인들에게 무료로 한국어 교습과 부엌데기(?) 자원봉사를 했다고 한다.

 

월드빌리지에서 어떤 사무행정일을 하셨냐고 물어보니 박영희씨는 간단히 답했다.

 

“밥하고 청소하고 뭐 이런 자원봉사를 했죠.”

 

그 외에도 박씨는 한국에 온 아티스트들을 위해 통역과 전시회를 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로 자원봉사를 해왔다.

 

인간, 인간의 심리를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이익을 생각한다.

 

박영희씨는 자기그림의 주제는 인간, 인간의 심리라고 했다. 박영희씨가 알려 준 홈페이지(www.youngheepark.com)를 들어가 보니 박씨가 그린 그림으로 가득하다.

 

 [Beginning of Desire] oil painting and paper on canvas, 91cmX116.5cm, 1996
[욕망의 시작] 캔버스에 유화와 종이붙이기, 162cmX130cm, 1996년

 

 

 

[because she is too young 1] oil painting and paper on canvas, 116.5cmX91cm, 1996
[너무 젊어서 1] 캔버스에 유화와 종이붙이기, 116.5cmX91cm, 1996년....

 

사회투자지원재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주로 번역하는 주제가 이탈리아의 사회적 기업들인데, 사실 좀 생소한 단어예요. 사회투자지원재단도 그렇구요. 자료를 읽어 보니까 이탈리아의 사회적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있었더라구요. 뭐랄까 자신 스스로 이해하고 이해시키고 하는 것같는 느낌이 들었죠.“

 

무슨 소리인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옆에 있던 장원봉 팀장이 끼어 들었다.

 

“혹시 인간의 보편적 공익이라는 의미인가요?.”

 

박영희 씨는 바로 그런 의미라고 했다.

금방 고개가 끄떡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질문도 무의미할 것 같았다.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박영희 씨에게 사회적 기업은 그런 느낌으로 존재하는 것이니까.

 

초록, 하얀, 빨간

 

당신에게 있어 자유에 대한 반대말은 뭐냐고 물었다.

“반복되는 일을 하는 회사생활”이라고 박영희씨는 답했다. 그녀 답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었다.

“그림 그릴만큼 생활비를 벌고 나머지 시간은 기본 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울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제가 돈으론 지원해줄 만큼 풍족하지 못하니까요.”

 

이탈리아의 국기는 3색기이다. 초록·하얀·빨강의 3색은 의미도 프랑스 기와 똑같이 '자유·평등·박애'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 박영희 Global Communicator를 보면서 나는 문뜩 초록,하얀,빨간 색이 떠올랐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