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소식들

아줌마 가장들의 통장엔 돈 대신 정情이 쌓인다

사회투자지원재단 2009. 3. 25. 11:34

엄마 가장들의 통장엔 돈 대신 정이 쌓인다

 

저소득 여성가장들에게는 불황의 봄이 겨울보다 춥다. 이런 아주머니들이 서로 모여 밑반찬이나 생필품을 물물교환하고, 미용기술·영어교육 같은 개인능력을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하기 시작했다. 거래내역은 고스란히 엄통장에 기록되고, 이렇게 모인 적립금으로 다른 사람의 물품이나 재능을 구매할 수 있다.

 

아줌마 가장들끼리 통장을 만들고, 입출금 사항이 아니라 물건과 서비스의 거래내역을 적는 것이다. 통장에 쌓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정(情)인 셈이다.

 

600여 여성가장끼리 물품과 재능 교환

 

이 생소한 저축증서의 이름은 ‘씨앗통장.’ 지난해부터 한국여성노동자회(대표 최상림)는 ‘빈곤 여성가장 품앗이를 통한 자립강화사업’(이하 품앗이 사업)의 일환으로 소속 회원 600여명에게 씨앗통장을 보급하고, 서로 간에 여유 있는 재능(서비스)과 물품을 나누도록 지원하고 있다.

 

물품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품앗이 장터를 통해 교환하며, 재능은 돌봄서비스나 풍선아트(풍선으로 동물이나 다른 공작물을 만드는 기술) 교육처럼 각자 가지고 있는 기능을 회원들에게 제공한다. 이들이 교환한 가치는 ‘씨앗통장’에 모이고, 자신에게 필요한 다른 회원의 재능 및 물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된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부천지부가 진행하는 품앗이 장터에서 회원들이 풍선아트 기술을 배우고 있다. ]]

 

품앗이 사업의 목표는 여성가장들 간에 물품과 재능을 서로 나누는 과정에서 생활비 절감과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측은 “회원간에 정을 나누고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효과도 있다”며 기존의 단순 자원봉사 혹은 재활용 바자회와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의 김유숙 팀장이 품앗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9개 한국여성노동자회 지부 중 부천여성노동자회를 찾았다. 아래는 이 지역 사업을 총괄하는 나순희 팀장과의 일문일답.

 

“지역 주부와 여성가장 문의 늘어나”

 

―현재 부천 지역의 회원은 어느 정도인가요?

 

“2008년 6월에 출범한 이후 꾸준히 증가해 지금은 114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어요. 대부분 여성가장이나 저소득층 여성들이죠. 최근엔 입소문이 퍼지면서 부천지역에 살고 있는 주부 및 여성가장들의 문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로 교환되는 물품은 밑반찬 식료품, 가방, 옷 등 생필품이라고 한다. 상호 교환되는 재능의 종류는 영어강좌, 미용기술, 풍선아트 등의 교육·돌봄 서비스 등이란다. 다음은 나 팀장의 말.

 

“이런 물건과 서비스는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지만, 우리 회원들은 품앗이 사업과 씨앗통장을 통해 본인의 노동 혹은 여유 있는 물품과 바꾸는 거예요. 관련 정보는 인터넷카페에서 나누고 있으며, 전국 통합 전산망으로 확대할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른 감이 있지만, 경제적 효과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되세요?

 

“ 이 사업의 목표는 소비 절감뿐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만으로 사업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지금도 품앗이로 아끼는 비용이 적지 않겠죠. 일반시장에서 구매하려면 밑반찬 값, 머리 손질 비용, 영어교육비만 해도 얼마이겠어요?”

 

[[ 지난 9월에 열린 품앗이 장터에서 부천여성노동자회 회원들이 대안경제에 관한 교육을 진행 중이다. ]]

 

“경제적 빈틈 메우고 지역공동체 형성할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품앗이가 주류 경제활동으로 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이 사업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품앗이 사업으로 모든 경제활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일반 경제에서 놓치거나 소외되는 빈틈이 저소득 여성가장에게는 너무도 크고 많아요. 이 사업을 통해 빈틈의 일부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사업의 더 큰 목표는 상부상조하는 지역공동체와 네트워크 형성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여성노동자회 회원을 중심으로 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주민들에게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나순희 팀장은 한 회원의 씨앗통장을 보여줬다. 젓갈, 반찬, 아이 돌보기… 거래내역이 작은 글씨로 빽빽이 적혀 있었다. 잔액이 꽤 되는 걸 보면 아직 얻은 것보다 베푼 것이 많은 듯하다. 언젠가는 이 여성가장도 다른 회원으로부터 꼭 필요한 도움을 받을 날이 올 것이다. <끝>

2009년 3월25일(수)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투자지원재단은 저소득층 관련 사업·정책 개발과 사회양극화 완화를 목표로 하는 비영리재단입니다. 연락처는 02-322-7020, 인터넷 홈페이지는 http://www.ksif.kr 입니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은 2008년도에 한국여성노동자회를 비롯한 전국 11개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원금을 지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