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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있어도 빚 때문에…” 부랑인의 신세 한탄

사회투자지원재단 2009. 3. 23. 11:34

“기술 있어도 빚 때문에…” 부랑인의 신세 한탄

 

삼심대 후반의 김종강(가명) 씨는 일정한 거처가 없는 부랑인이다. 회사원 시절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다가 소위 ‘신용불량자’(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김씨는 대출 이자를 갚다가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고, 한동안 술로 살며 꽃게잡이 어선에 타기도 했다.

 

지금은 ‘24시간 게스트하우스’라는 노숙인·부랑인 쉼터에서 살고 있다. 점차 안정을 찾은 김씨는 “빚 때문에 어떤 재활교육도 도움이 안 된다”며 “압류 걱정 없이 저축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기술이 있어도 빚 때문에 부랑 생활을 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의 살아온 날.

 

[[ 노숙인·부랑인 문제 해결에서 빚 문제는 큰 걸림돌이다. ]]

 

어머니 간병하다 빚지고 꽃게잡이 어선 타기도

 

약 10년 전 김씨의 어머니에게 치매와 파킨스씨 병이 동시에 왔다. 월 150만원을 받던 회사원 김씨는 “자식이 있는데 간병인을 두기가 싫어” 직접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누가 부른다”며 한밤에 4층 창문 밖으로 나가려는 어머니를 24시간 돌볼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년 동안 모자가 함께 생활했다.

 

“간병하고 병원에 오가다 보니 통장의 돈은 0원이 됐어요. 은행에서 대출을 받던 끝에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돌려막기’를 시작했어요. 직장생활하며 거래 은행의 실적을 높여 주느라 신용카드를 열 몇 개나 만들었거든요.”

 

김씨의 어머니는 간병의 보람도 없이 2년만에 돌아가셨다. 그 뒤 6개월까지 김씨는 직장을 계속 다녔지만 수천만원의 원금을 갚기는커녕 이자 내기조차 버거웠다. 대출기관은 회사에 월급 차압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김씨는 “창피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며 “빨리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못했다”고 한다.

 

어느 날 술을 마신 뒤, 전 재산 100만원을 들고 은행으로 갔다. “나 가진 것 이게 다다.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며 소리치고는 전남 진도로 내려가 꽃게잡이 배를 탔다. “(인생의) 바닥을 치면 새 출발할 수 있을까 싶었고, (막막한 상황을) 피하려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6개월의 조업기간이 끝나고 서울에 올라왔을 때 김씨는 손에 300만원이 있었다. 고시원에 들어가 술로 세월을 보냈다. 하루에 소주 서너 병을 마시기도 했다. 돈이 떨어지고 몸이 말을 안 듣자, 김씨는 구청을 찾아갔다. 여러 시설을 오간 김씨는 현재 노숙인·부랑인의 재활기관인 ‘24시간 게스트하우스’에 살고 있다.

 

 

의지 있어도 빚이 문제, 금융기관 손 못 대는 재활통장 필요

 

그동안 김씨는 식당 일, 공공근로, 막노동에 나섰다. 친지의 집에 찾아가기도 했지만 “자격지심 때문인지”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게스트하우스 생활을 3~4년 하다 보니 “정상적이진 않지만 여기가 편해지더라”고 했다. “예전에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했지만 지금은 바깥 일이 겁난다”고 고백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빚이다.

 

“밖에 나가면 (막노동판에서) 반장급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분들이 있어요. 기술과 일할 의지를 가지고 돈을 버는데 왜 빨리 나갈 생각을 안 할까? 대부분 금융권 채무가 있기 때문이에요. 한 분은 사업을 하시다가 5000만원의 빚이 생겼어요. 빚을 완납해야 다시 장사를 시작할 텐데, 그 큰돈을 어떻게 한 번에 갚아요?”

 

자활기관에서 생활하는 식당아주머니, 전직 용역사업체 사장 등 다른 채무자들의 얘기도 꺼냈다. 김씨는 “내 신용을 회복시키라거나 세금을 써달라는 말이 아니다”라며 “금융기관이 손대지 못하는 (재활)통장을 만들어 어느 정도 금액을 모아야 빚을 털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압류 때문에 저축을 하려야 할 수가 없단다.

 

노숙인·부랑인 중에 과중채무자는 의외로 많다. 한 재활센터 관계자는 “노숙인은 수입이 있어야 독립할 수 있는데, 빚 때문에 직장을 구하지 못 한다”며 “채무문제 해결이 급선무”라고 말할 정도다. 당장 개인파산제·개인회생제 등 법원 중심의 공적 채무조정제와 가압류·강제집행절차에 대한 실용적 안내가 필요한 상황이다.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지만 또 주저앉을지 모른다”는 김씨는 “서울시 등이 저렴한 월세만 받고 운영하는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하고 싶다”고 바람을 말한다. 조그만 장사도 하고 싶단다. 하지만 채무문제는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절망과 희망의 틈에 끼어 있는 김씨에게 우리 사회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끝>

2009년 3월23일(월)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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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투자지원재단은 지난 2월 서울역 등에서 노숙자·부랑인·장기실업자들을 만나 1대 1 심층면접을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