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소식들

미술 대신 미용 택한 여중생, 재능 아깝지만…

사회투자지원재단 2009. 4. 20. 11:39

 

“우리 반에 정부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 아이가 있어요. 부모님은 안 계시고, 언니와 할머니까지 세 식구가 삽니다. 공공근로로 돈을 받는 할머니는 가끔 너무 먼 곳까지 일하러 가기 때문에 당일에 못 들어오실 때가 있대요. 그러면 여고 2년생과 여중 3년생인 자매 둘이서 밤을 보내야 한답니다.”

 

서울 강동지역의 한 여자중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은 이미경(가명) 선생님은 제자 걱정에 고민이 많습니다. 선생님 반의 학생 35명 중에서 여섯 명이 급식비 또는 학비 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어렵다고 하는군요. 그나마 “서울의 어떤 지역은 한 학급생의 절반 이상이 지원 대상인 곳도 있다”며 위안을 삼는 실정입니다.

 

[[ 한 TV뉴스에서 저소득 청소년의 학교 급식 지원 문제를 다뤘네요. 민간단체의 지원은 줄어들고 어려운 아이들은 늘어가니 큰일입니다. ]]

 

어려워진 학생은 늘고 지원은 줄어든 현실

 

“지난해 중순부터 형편이 어려워진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 무렵 매년 10명의 학생들에게 급식비를 대주던 성당이 (경제난 때문에) 지원을 중단했지요. 아이들은 가정문제로 기가 죽고 성적은 바닥을 깁니다. 성격이 비뚤어지기도 십상이죠.”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 지원을 받는 위의 두 자매 이야기도 선생님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 학생이 가정조사 서류를 자꾸 가져오지 않아서 이유를 캐 보니 “(보호자인) 할머니가 일하러 가셔서 연락이 안 된다”고 대답하더라는군요. 기막힌 사연도 있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삼촌도 함께 살았다고 하더군요. 어느날 삼촌이 술을 먹고 들어와 아이들을 때렸고, 언니는 뼈가 부러졌답니다. 그 때부터 자매가 친구 집을 떠돌고 학교를 소홀히 했어요. 삼촌이 거처를 옮긴 뒤에야 다시 집에 들어갔다고 해요.”

 

선생님의 마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비록 부모님 없이 어렵게 사는 자매들이지만, 재주가 비상하다고 하네요. 문제는 재능을 펼 수 있는 환경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지요.

 

“자매들 모두 손재주가 좋고 기억력이 비상해요. 무슨 일을 시키면 빨리 처리하고 금세 외우죠. 특히 미술 감각이 뛰어납니다. 공작시간에는 다른 아이들이 한창 만들고 있을 때 이 아이는 혼자 작업을 끝내고 노닥거릴 정도예요.” 

 

 

 [[ 미래와 현실 사이. 16세 여중생의 선택은? ]]

 

가난 때문에 재능을 꽃 피우기 어려워

 

이 학생의 부모님이 비슷한 공부를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은 더 놀랍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부는 집에 가서 복습을 해야 실력이 늘어나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리시네요.

 

“언니와 동생 모두에게 미적 재능이 있습니다. 언젠가 아이에게 ‘여고 진학하면 미술반에 넣어줄까’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저는 미용사가 될 거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저소득층 청소년은 또래의 다른 학생들과 희망의 질이 다르다는군요.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 꿈이 없다거나, 매우 현실적이라는 게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제자의 답변에 선생님은 “디자인 쪽으로는 안 될까?”라고 은근히 물었답니다. 이 여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더군요.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냥 미용 배울래요.”

 

학생의 언니는 공업고등학교 2학년이고, 중3년생인 학생은 역시 실업계 진학을 바라며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생활비도 문제고,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멘토(Mentor: 정신적 지주)라도 있었으면 한다”며 속상해했습니다. 모범이 될 만한 어른이 아이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지요.

 

[[ 대학생들이 방학이나 쉬는 시간에 자기 청소년들에게 멘토, 즉 정신적 조언자 역할을 해주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답니다. 우리 사례에 나온 여중생은 어떻게 자기 멘토를 찾았을까요? ]]

 

며칠 뒤 선생님은 전화 통화에서 희망인프라 담당자에게 다른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아이 스스로 멘토를 찾았더군요. 방과 후에 동네 미용실로 찾아가 주인아주머니에게 열심히 미용 실습을 배운답니다.”

 

올해 16세의 여중생은 어른들이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꿈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이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르겠군요. <끝>

 

2009년 4월20일(월)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투자지원재단은 빈곤층으로 떨어지려 하거나 위기 상황에 처한 가정에 채무상담·지원제도 안내 등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위기탈출 자립지원 정보센터’ 운영을 추진 중입니다. 홈페이지는 http://www.ksif.kr/ 연락처는 02-322-7020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