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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버림받은… 나는 불량품”

사회투자지원재단 2009. 11. 2. 11:37

“엄마에게 버림받은… 나는 불량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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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어머니가 가출을 하셨어요. 그러다가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로 찾아왔어요. 여동생을 보고 싶다고 해서 내가 집에서 데리고 나왔는데, 어머니가 어디 잠깐 갔다 온다고 하고는 동생을 데리고 그냥 가셨어요. 저만 내버려두고….”

 

1970년생인 이도윤(가명) 씨는 스스로를 ‘불량품’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에게 버림받고 스스로 좌절하는 삶을 겪으며 극도의 체념을 드러냅니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만큼 그를 옹호할 의도는 없습니다만, 그의 생애를 들어보면 돌을 던지기도 쉽지 않군요.

 

 

[[ 엄마가 버린 네 아이들은 어두운 방구석에서 남매끼리만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다가…. 실화를 소재로 만든 슬픈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포스터.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

 

 

무관심 속에 중학교도 못 채운 어린 시절

 

 

어머니와 동생이 떠나던 그날 13세의 이씨는 집에 돌아가 아버지에게 엄청 꾸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보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더 컸다는군요. 이씨는 엄마와 가정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누나가 두 명 있었지만 밖에 나가서 기숙사 생활을 했어요. 집에는 아버지랑 나랑 둘만 있었죠. 내 생활을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어요. 학교는 가고 싶을 때 갔으니 공부는 못 했죠. 배움에 흥미가 없어서 중학교 1학년까지 다니다가 그만두고 집에서 놀았어요. 아버지는 뭐라 야단치지 않았고요.”

 

동네 이웃이 서울 독립문 근처의 조그만 봉제공장을 소개해 줬습니다. 이씨는 스물한 살까지 그 곳에서 일하며 자랐습니다. 월급을 받으면 아버지에게 갖다 줬습니다. 처음엔 아버지가 미웠지만, 어머니의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부친의 정을 많이 느꼈다는군요.

 

이씨는 착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이십대 중후반 때는 가정도 꾸렸습니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 결혼식은 치르지 못했지만 정식으로 혼인 신고를 했고 예쁜 딸도 낳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대신 둘째아이가 태어났지요.

 

그 시절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IMF 외환위기 탓에 봉제공장이 문을 닫고 이씨의 가정도 안팎으로 위기를 맞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고비를 이겨낸 이씨는 중국집 배달 일을 시작했습니다. “5년간 일해서 자리를 잡았다”며 “다른 마음 안 먹었다”고 합니다.

 

 

[[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일러스트: 임동현 ]]

 

 

십여 년 만에 어머니를 만나고 난 뒤 방황

 

어느 날, 어릴 적 헤어진 어머니와 동생이 우편으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이씨는 고민 끝에 모친을 만나기로 결심합니다. 부인과 큰애와 작은애를 데리고 어머니가 사신다는 경기도 이천까지 찾아갑니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와 십여 년 만에 만나는 날, 가깝지 않은 그곳까지 온 식구를 대동한 이씨의 속마음이 짐작 가십니까.

 

“(어머니의) 남자가 있더라고요. 어머니와 동생하고 만날 때 별로 정 같은 게 느껴지지 않고 좀 낯설었어요. 그냥 아무 말 없이…. 어머니가 보자마자 우셔서 마음은 좀 약해지더라고요. 사실 나를 버리고 가서 얼마나 잘 사는지 한 번 보자는 기분으로 갔거든요.”

 

담담한 듯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지 이씨는 “이 얘기만 하면 속에서 막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합니다.

 

“혹시 동생이 아버지의 씨가 아닌 게 아니냐는 직감도 들었어요. 그래갖고 이렇게 자기들끼리 모여 사는구나…. 한편으로는 애 엄마를 볼 수가 없었죠. 창피하고 부끄러웠어요. 서울로 올라와서 아내와 그냥 서먹서먹해졌어요.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부부싸움이 잦아졌고, 싸우는 도중에도 나는 대꾸할 말이 없었어요.”

 

불우하게 성장한 이씨에게 본격적인 불행이 다가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인생이란 파란만장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씨의 이야기는 다음번에 끝을 맺겠습니다. <계속>

 

※ 희망인프라 블로그를 운영 중인 사회투자지원재단은 지난해 ‘노숙인·부랑인의 자립자활을 위한 감정적 임파워먼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때 만난 김씨의 사연을 여기 소개하는 이유는 이들의 재기·재활을 위해 마음의 치료가 다른 지원과 함께 이뤄져야 함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2009년 11월2일(월요일)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