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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인을 만나다] 활동가의 변신은 무죄!? - 권운혁 경기도따복공동체지원센터 센터장-

사회투자지원재단 2016. 6. 16. 17:07




고된 현실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희망인"을 만나러 갑니다.

이 코너는 사회투자지원재단의 후원회원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봄 기운이 완연한 날, 10여년 가량을 사회적기업가로 활동하다 작년 12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센터(이하 따복센터)’의 센터장으로 취임을 한 권운혁 센터장을 만나러 경기도인재개발원 도서관 3에 소재한 따복센터 남부사무실을 찾았다.

  외부에서의 긴 회의를 마치고 서둘러 사무실로 들어 온 그이는 여전히 사회적기업 컴윈의 바쁜 대표님의 모습 그대로,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인사를 건넨다.

그이가 센터장으로 취임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 라는 질문을 할 정도로 사회적기업가가 아닌 다른 역할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모습을 보니 관록있는 센터장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그이는 왜 사회적기업가에서 지원기관의 센터장이 되었을까 ? 오늘은 그 궁금증을 해결해 보기로 했다.

 

  권운혁 센터장은 경기도 화성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스로도 부업이 농사라고 할 정도로 지금도 틈틈이 부모님의 일손이 되어 농사를 거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잔치에 사용할 돼지도 잡아 본 적이 있어서 자신을 백정에 비유하며 농()을 하기도 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고 스스로도 농사에 애착을 갖고 있어서 인지 학생 운동 이후에 노동현장이나 시민단체가 아닌 카톨릭 농민회에서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를 거쳐 천주교 수원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에서 산지와 소비자의 직거래 운동을 했으며, ‘수원농산물도매시장에서 수매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저렇게 8년 가량을 농업 유통과 관련 된 분야에서 활동을 해온 이력을 갖고 있다.

  농업 관련 분야에서 일을 계속 해 볼 요량을 갖고 있던 그이에게 변화의 계기가 주어졌다.

IMF 구제금융 양해 각서 체결 이전, 기업들의 부도가 줄줄이 이어지던 1997년에 기아자동차 살리기 안산시민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활동이 그랬다. IMF 외환위기는 우리 사회의 구조 변화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역할에도 많은 변화를 야기한 사건이었는데 그이도 피해갈 수는 없었나 보다. 대책위에서 그가 한 일은 실직 자녀 지원 활동이었고, 이 활동이 계기가 되어 2000년에 지정된 안산지역자활센터의 실장으로 제안을 받아 자활사업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단다.

 

  자활사업은 현재의 그이가 있게 한 직접적인 발판이 되었다.

20041, 안산지역자활센터와 시흥작은자리지역자활센터에서 인큐베이팅 한 재활용사업단을 통합해 경기광역 차원의 자활기업인 ()컴윈을 설립해 컴퓨터 재활용사업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그이는 안산지역자활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었고, ()컴윈의 감사를 겸하고 있었다.

  주변의 많은 관심 속에서 출범한 ()컴윈은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 힘입어 시장 영역을 확장하며 급속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나 기업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조직 운영상의 문제로 -이해관계자 관리, 조직 내부의 체계화, 민주적 운영의 정착 등- 2005년 내부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 센터장이 2006년 구원 투수로 ()컴윈의 대표이사로 등판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컴윈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 10년은 컴윈의 문제만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기업가로 안산과 화성지역의 사회적경제를 확장시키고 활성화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지역에서 이루어진 사회적경제 주체들의 활동은 경기도 차원의 사회적경제지원센터라고 할 수 있는 따복공동체지원센터2015년에 설치하는 결실을 내왔다. 따복센터는 현재 ‘()마을과 사회적경제라는 경기도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네트워크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

  ()컴윈에서의 경험은 그이에게 각별해 보인다.

전체 성원들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오면서 형성 된 동지애일터 공동체를 넘어 생활공동체를 함께 꿈꾸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또한 지금도 컴윈에서 일하고 있는 창립 멤버들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할 수 있었기에 자활 사업 참여주민들에 대한 신뢰가 강해지는 경험이 되었단다.

 

  ‘일터 공동체를 넘어 생활공동체를 주민들과 함께 꿈꾸던 그이였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따복센터의 센터장이 사고로 이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해 후임 센터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마을과사회적경제 이사장을 맡고 있던 그이에게 경기도에서 후임 센터장을 맡을 것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지원조직에서 활동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던 그이가 후임 센터장 자리를 거절한 탓에 한동안 피곤한 시간을 보냈나 보다. 계속되는 요청과 설립 책임감에 따라 그이는 새로운 일터와 역할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단다.

  무엇보다도 컴윈의 식구들이 눈에 밟혀 결정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컴윈이 도약하고 새로운 변화로 나아가기 위해 자신 스스로가 낡은 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컴윈 내부에도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중간리더들에게 좀 더 성장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계속 되어왔던 그이의 고민은, 더 미룰 수 없는 따복센터의 상황에 따라 일단락 지어지게 되었다. 비록 그이 스스로 꿈꾸고, 계획했던 역할은 아니었지만, 그이와 컴윈 모두에게 새로운 10년의 시작점이 생겼고, 그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맡기고 성장해야 하는 도전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결국 그이와의 대화 속에서 확인한 것은 사회적기업가에서 중간지원조직의 센터장이 된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주어졌고, 그런 상황을 개인과 조직이 변화 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담담함이 거창하지 않아 자연스러워 보인다.




  따복센터의 신임 센터장으로 정심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이는 따복센터의 내부를 정비하고 안정화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삼고 있으며, 사회적경제 현장 조직들의 성장을 돕고 현장에 유용한 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컴윈과 따복센터에서의 권운혁은 무엇이지 다른지 ?’ 라는 물음에 그이는 사람과 관계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라고 응한다.


  컴윈 대표 때는 한 명의 주민들과도 더 부대끼려고 했었는데,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따복센터의 센터장이 되고 나서는 일 이외의 사적인 만남을 가급적 자제하고 있다고 한다. 나름 중립과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그이의 노력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그이에게 참 힘든 일이겠다 싶다.


조직의 역할과 성격은 다르지만 모든 조직을 관통할 수 있는 리더쉽은 존재하는 법 ! 권운혁 센터장에게서는 그런 리더쉽의 향기가 나는 듯하다.


  자신이 꿈꾸었던 일과 생활이 어우러지는 공동체는 기약할 수 없는 나중의 일로 뒤로 물리게 되었지만, 새로운 역할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고, 사회적경제를 위한 좀 더 직접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 하고 맡은 역할에 매진하겠다고 한다.


    세상살이가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에 대처하는 개개인의 태도는 매우 다르기에 누구는 지옥을 경험하기도 하고 누구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삼기도 한다. 아마도 권운혁 센터장의 경우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능히 삼을 수 있는 긍정 마인드와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새로운 위상에서 사회적경제 활동을 하는 그이에게 격려를 보낸다.



                                                                                                                         ▲ 글 : 문보경 (사회투자지원재단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