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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관심사 인문학, 저소득층에게 가르쳤더니

사회투자지원재단 2009. 6. 5. 10:11

CEO의 관심사 인문학, 저소득층에게 가르쳤더니

 

요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인문학에 부쩍 관심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21세기 기업 생존의 화두인 ‘창조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랍니다. 평범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들은 사는 데 바빠 사회과학 서적을 들여다 볼 틈이 없지요. 그런데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문학은 세상과 어우러져 살아가기 위한 발판이자 바른 사고를 위한 기초이며, 급박한 일이 닥칠 때 폭력으로 대처하기보다 자신과 주변을 살펴보도록 하는 단초입니다. 인문학을 배운 개인은 자신의 입장을 펼칠 줄 아는 정치적 주체로 거듭날 것입니다.”

 

 [[ 한 교도소의 여죄수에게 “우리는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는 정신적 삶이 없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말을 듣고 소외계층에게 인문학을 가르치기로 했다는 얼 쇼리스. ]]

 

저소득층·노숙인·죄수·알콜중독자에게 인문학 가르쳐

 

이 말을 한 사람은 얼 쇼리스(Earl Shorris)라는 미국인으로, 그는 저소득층·노숙인·죄수·알콜중독자·마약중독자 등 소외계층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코스(Clemente Course)’의 창시자입니다. 클레멘트 코스는 미국에서 시작해 현재 5개 나라에서 53개 코스가 운영 중입니다.

 

여러 나라의 소외계층은 대학 진학률이 낮고 인문학을 배울 기회도 부족합니다. 클레멘트 코스는 경제적·교육적으로 열악한 계층에게 대학 수준의 인문학 강의를 무상으로 실시하고, 모든 과정을 마치면 수료 증서까지 줍니다. 그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에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가 열린 바 있지요.

 

클레멘트 코스의 참가 학생들은 문학, 예술사, 도덕 철학, 미국사의 네 과목을 배웁니다. 양질의 교육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소설·시·희곡 같은 문학작품, 회화·조소·건축 같은 미술작품 등을 가르침 받는 것이지요.

 

 

  [[ 2008년 ‘클레멘트 코스’를 이수한 학생들. 그동안 수천 명이 이 코스에 지원했으며, 1000명 이상이 새로운 포부를 갖고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

 

세미나·논증 통해 인식·사고의 범위 확대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글쓰기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키웁니다. 교양이나 상식과 거리가 멀었던 이들이 세미나 형태의 수업과 논증 형식의 탐구 학습을 통해 인식을 확대하고 합리적인 사고력을 갖추며 토론 능력을 키웁니다. 한 한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어요. 가족 중에 어머니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셨죠. 그래선지 뭔가 모를 부족감을 느꼈습니다. 열등감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기를 두려워했어요. 클레멘트 코스를 거치며 저도 당당히 경쟁할 수 있으며, 남들보다 앞설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1995년 뉴욕에서 얼 쇼리스는 첫 인문학 강좌를 시작했습니다. 장소는 사회봉사로 이름난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의 이름으로 세워진 ‘로베르토 클레멘트 가정상담센터’였지요. 당시 노숙인, 빈민, 죄수 등이 강의를 신청했고, 끝까지 남은 17명은 대학 진학이나 취직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삶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 2006년 방한한 얼 쇼리스와 한국 노숙인의 만남. 질문과 답변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한 노숙인은 “돈 대신 덕이 있다면 남들의 존경심을 얻는다. 남의 지지를 받는 데서 행복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

 

자기존중의식, 희망, 자신감 얻어

 

이 사업을 발전시킨 뉴욕주의 바드대학(Bard College)은 10여개의 주에서 100회가 넘는 클레멘트 코스를 운영했습니다. 그동안 약 2400명의 학생들이 지원해 1500명가량이 수료 증서를 취득했고 약 1300명이 학점을 이수했습니다. 1100명 정도의 학생이 4년제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씩, 8개월에 걸쳐 110시간 동안 진행됩니다. 바드대학뿐 아니라 협력단체에서도 학습이 이뤄집니다. 참가자는 교재와 교통비, 육아비를 제공받으며, 수업료는 낼 필요가 없습니다.

참가자들은 인문학과의 만남이 지성적으로나 인성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수료생들은 자기존중의식을 높이고 미래의 포부를 키울 수 있으며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자신감을 얻습니다. 더 나은 부모가 될 수 있어서 기쁘다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동안 정치와 교육과 사회에서 소외됐던 학생들은 클레멘트 코스를 통해 계급, 인종, 세대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그들은 스스로 특별한 존재임을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같은 자아의 발견이야말로 창조경영보다 중요한 인문학의 가치가 아닌가 합니다. <끝>

 

 

2009년 6월5일(금)

‘희망인프라’ 사회투자지원재단

※이 글은 세계의 사회공헌 경제와 기업 활동을 소개하기 위한 사회투자지원재단의 글로벌 커뮤니케이터 김동현 씨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습니다.